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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및 동아시아 인문학

18세기 전후 영국의 중국 인식
Britain's Perception of China before and after the 18th Cent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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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2집 (2014.03)바로가기
  • 페이지
    pp.181-203
  • 저자
    李垠尙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25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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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 have studied in the paper the social lives of things China imported intoEurope before and after the 18th century focusing on blue-and-white porcelainof Jingdezhen based on Arjun Appadurai's theory of ‘social life of things’ in hiswork The Social Life of Things: Commodities in Cultural Perspective. Chineseporcelains began to be imported into Europe after discovering the Indian spiceroutes around the Cape of Good Hope by Vasco da Gama. Europe began toimport blue-and-white porcelains of Jingdezhen in large quantities in the 17thcentury as many countries including Holland and England established EastIndian Company. Things China such as blue-and-white porcelain ofJingdezhen, lacquer ware, wallpaper captivated Europeans. Rococo art wascreated by chinoiserie which reached its zenith in the second half of the 17thcentury and the late 18th century. The royal families and the affluents inEurope decorated their surroundings with chinoiserie. They considered Chinaas an idealized state which they should emulate. China represented on Delftware could be the interpretation of contemporary Europeans fascinated byChina. The perception of China by Europeans, especially that of Briton began tochange in the 19th century. England in Victorian age succeeded in herimperialism and Europeans' increasing invasion of China began to weaken thefantasy about China as the source of chinoiserie. China after losing the OpiumWar began to collapse rapidly. Briton's perception of China also much changedrather than previous years. Britons were intoxicated with superiority afterwinning the Opium War in 1842. Things China which were exhibited in Londonsince the London exhibition of Nathan Dunn's Chinese collection in 1842became to have an ethnographical significance which could testify Briton'simperialistic superiority.
한국어
이 논문에서 필자는 아르준 아파두라이가 The Social Life of Things에서 말한 물질의사회적 삶을 중국의 경우 에 적용하여, 중국 장시성江西省 징더전景德鎭에서 생산된 수출용청화백자를 비롯하여 18세기 전후 유럽으로 유입된 중국 물질들의 사회적 삶에 관해 살펴보았다. 중국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유럽으로 유통되고, 유럽 소 비자들에 의해 재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당시 유럽인, 특히 영국인들의 중국 인식이 어떻게 변화해 가 는지를 살펴보았다.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가는 루트를 개척하고부터 중국 자기가 본격적으로 유럽으로 유입되 기 시작했다. 17세기로 들어와 네덜란드와 영국을 비롯한 유럽 국가들이동인도회사를 설립하면서 징더전 청 화백자를 대량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징더전의 청화백자를 비롯하여 칠기 가구, 벽지 등 중국 물건들은 유 럽인들을 매료시켰다. 17세기 후반과 18세기 후반까지 절정을 이룬 시누아즈리는 로코코 예술을 탄생시켰다. 이 시기 유럽의 귀족과부호들은 자신들의 주변을 중국 스타일의 시누아즈리로 장식했다. 그들에게 중국은 그 들이 본받아야 할 이상적인 나라로 비춰졌다. 예를 들어, 네덜란드 델프트에서 생산된 도기에 재현된‘중국’은 유럽이 중국에 경도되었던 시기에 유럽인들의 중국 해석, 즉 시누아즈리라고 할 수있다. 19세기에 들어와 유럽인들, 특히 영국인들의 중국 인식에 변화가 일어났다. 영국은 빅토리아 시대에 그들의 제국주의가 성공을 거두었고, 유럽인들의 중국 침범은 시누아즈리의 원천이던 중국에 대한 환상을 약화시켰 다.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중국은 급속하게 붕괴되기 시작했다. 아편전쟁 이후 영국인들이 인식하는 중국의 위 상은 이전과 많이 달라졌다. 이제 중국은그들의 철갑선인 네메시스에 의해 무참히 무너진 패전국이었다. 이러 한 중국의 위상이 1864년에 휘슬러가 그린 그림 <자줏빛과 장밋빛>에 반영되었다. 휘슬러의 그림 속 청화백 자는 시누아즈리가 절정을 이루던 시기에 유럽인들의 그림 속에 등장했던 청화백자와는 그 의미가많이 달랐 다. 중국은 휘슬러의 그림 속 여인처럼 연약한 여성화된 나라였으며, 또한 그림 속에진열되어 있는 중국 수출 용 자기처럼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품처럼 인식되었다. 1842년 이후런던에 전시된 ‘중국’ 또한 휘슬러의 그림 속 청화백자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1842년 아편전쟁에서 승리하여 우월감에 도취되어 있던 영국인 들에게 런던에 전시된 중국 물건들은 그 물건들이 가치를 발했던 시공간을 떠나 런던의 박물관에 전시됨으로 써 아편전쟁에서승리한 영국인들에게 제국주의적 우월감을 증명해 주는 민족지학적 의미를 지니게 된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징더전의 청화백자와 네덜란드의 델프트 도기
 3. 휘슬러의 청화백자
 4. 런던에 전시된 중국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중국 아파두라이 물질문화 시누아즈리 청화백자 징더전 영국 박물관 델프트 휘슬러 빅토리아 여왕 China Appadurai material culture chinoiserie blue-and-white porcelain Jingdezhen England museum Delft Whistler Queen Victoria

저자

  • 李垠尙 [ 이은상 | 祥明大學校 韓中文化情報硏究所 硏究員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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