上海라는 곳이 자그마한 어촌에서 근대 동아시아를 상징하는 대도시로 변신하기 시작한 것은 1842년 남경조약이 체결되고 開港場이라는 곳이 생기고 또 그 속에 租界地가 생겨나면서부터이 다. 상해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흔히 근대, 서구라는 담론과 연관해 생각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근대나 歐美라는 곳에만 초점을 맞출 때, 상해연구의 의미는 19세기 중반부 터 영국 식민지 당국의 직접적인 지배하에 있었던 홍콩이나 동아시아 도시화의 최전방에서 달리 고 있던 도쿄에 대한 연구보다 중요성이 덜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 상해연구가 각광을 받고 있는 이유는, 상해라는 도시가 홍콩이나 도쿄와 달리 歐美적인 것들과 아시아적인 것들이 너무나도 뒤엉켜 있었고 또 이러한 점이 동아시 아의 근대의 굴곡적인 역사과정을 상징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국의 상해연구도 국민국가의 성립을 목표로 한 독립운동에만 치우칠 것이 아니라 좀 더 넓은 시각에서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식민지 시대 유교개혁 지식인이었던 眞庵 李炳憲(1870-1940)의 상해 遊歷을 중심 으로 그가 상해에서 어떤 인물들과 교류를 했고, 또 어떤 내용을 둘러싸고 교류를 했으며, 또한 어떤 성과를 이룰 수 있었는지(혹은 없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나아가서 근대 동아시아 사상 사에서의 상해의 의미를 검토하고자 한다. 본 연구의 고찰대상인 이병헌은 일본 식민지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유학 개혁운동으로 한민족 의 진로를 찾으려고 중국과 일본에 드나들며 공교운동에 진력했던 인물이다. 그의 개혁운동은 일 제의 식민통치에 협력했던 대동사문회와 차원이 다른 것이었으며, 또한 이승희나 김정규와 같이 망명하여 중국 동북지역의 한인사회에서 공교활동을 전개했던 것과도 다르다. 한편 이병헌처럼 한국과 상해를 드나들며 여러 가지 이념을 지닌 인물들과 접촉한 이는 드물다. 이병헌의 상해 유 력과 그 과정에서 접촉했던 인물들을 정리하고 분석하는 것은 이병헌연구 뿐만 아니라, 국경이나 민족, 심지어 부동한 이념을 넘어선 근대 동아시아의 지적 세계를 고찰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 다. 동아사아 지적 공간이라는 새로운 설정도 상해 연구에 새로운 연구시각을 부여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