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駐美公使崔國因對朝鮮安全問題的思考
The CuiGuoyin’s thought about Koreasecurity
청말 주미공사 최국인의 조선 안전 문제에 관한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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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전북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전북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4호 (2014.04)바로가기
  • 페이지
    pp.223-238
  • 저자
    周國瑞
  • 언어
    중국어(CHI)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17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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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is intended to study ideas about protecting Korea of CuiGuoyin through reviewing his journal and memorials. CuiGuoyin was a traditional intellectual, but he was concerned about the current affairs and was versed in foreign affairs. Li Hung-chang appreciated his ability in foreign affairs. Therefore, Cuiguoyin was appointed minister to Americain1889. Before leaving China, CuiGuoyin believed that Korea was very important for Chinese security. He pointed out that Japan or Russia would invade Korea. If Japan or Russia offence Korea, he advised the Qing Dynasty appeal to arms to settle dispute. The reason that he thought Japan would invade Korea was because Japan constantly created problems with other counties in Asia. Chinese intellectuals agitated that Qing Government should protect Korea from Russia invasion. CuiGuoyin was influenced to some extent by Chinese intellectuals’ opinion. He advocated that Qing Dynasty should appeal to force to protect Korea. But his advice was wrong, because the Qing armies had not enough power. After he went to America, CuiGuoyin thought Russia was more likely to invade Korea than Japan. He thought Russia gradually showed force towards other counties in Asia, especially Korea, becausethe Triple Alliance curbed Russian aggression in Europe. When Russia began to build the Siberian railway, he was more concerned about Russia. But he didn’t recognize the increase in national strength of Japan and its aggressive ambition. He advised that Qing Government should joint Japan to protect Korea, because he thought China and Japan shared the same culture and genes. In CuiGuoyin’s view, the aim of China- Japan Joint was to set Japan on the Sino-foreign country order.
한국어
본고는 淸나라 말기에 駐美公使를 역임하였던 崔國因의 日記와 文集을 통하여, 그가 駐美公使로 나아가기 이 전 시기와 그 이후 시기에 조선의 安全 問題에 대하여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살펴보려 한다. 崔國因 은 전통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지식인이었지만, 그는 그가 살던 사회적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러한 관심으로 특히 “洋務運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그리고 그가 駐美公使로 임명될 수 있었던 중요한 원인 중에 하나도 당시 실력가인 李鴻章이 “洋務運動”에 대한 그의 능력을 높게 평 가하였기 때문이었다. 미국 공사로 부임하기 이전에, 崔國因은 조선이 중국의 국방상 안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는 일본이나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만일 조선이 이들 국가들로부터 침략을 받게 되면 淸나라에서는 반드시 武力을 동원하여 조선에 군대를 파견해야 한다고 주장 하였다. 그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할 것이라 생각하였던 이유는 당시 일본이 아시아 각 지역에서 문제를 일으 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가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할 것으로 보았던 까닭은 당시 淸나라 사회에 만 연되어 있던 “防俄論”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다. 아마도 그는, 1882년 ‘壬午軍亂’ 때 淸나라가 군대를 파견한 것 을 보고, 朝鮮을 무력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던 듯한데, 하지만 이러한 그의 주장은 현실과는 다른 것 이었다. 왜냐하면 淸나라 군대는 이들 강대국들을 상대하여 이겨낼 만큼 결코 강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미국 공사로 부인한 이후, 崔國因은 러시아가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더욱 큰 것으로 보았다. 그리하여 그는 중국과 일본이 연합하여 조선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당시 국제 관계를 분석하여, 러시아가 유 럽에서 “3國同盟”으로 인해 많은 제약을 받고 있으므로, 아시아 지역 특히 조선을 침략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한 이후로는 러시아가 시베리아 철도를 이용하여 조 선을 침략할 것이라는 그의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이에 비하여, 崔國因은 일본의 세력이 강대해지고 그들 의 야심이 점점 커지고 있는 모습은 인식하지 못하였다. 오히려 그는 “同文同種”의 시각에서 중국과 일본이 연합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를 좀 더 자세히 말해 보면, 崔國因이 중국과 일본이 연합하여 조선을 보호해야 한 다고 주장하였던 목적은 중국이 그렇게 함으로써 일본을 전통적인 華夷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목차

Ⅰ. 出使前對朝鮮問題的思考
 Ⅱ. 出使美國後對朝鮮問題的思考
 Ⅲ. 餘論
 <국문초록>
 
 <참고문헌>

저자

  • 周國瑞 [ 주국서 | 中國石油大學(華東)馬克思主義學院講師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전북사학회 [The Jeonbuk Historical Society]
  • 설립연도
    1977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역사학의 발전과 민족문화의 창달에 이바지한다"는 목표하에 도내의 역사학자들을 주축으로 1976년에 창립된 이래 30년 이상의 연륜을 이어온 정통 역사학회이다. 수차례의 학술대회를 개최하였을 뿐 아니라, 학술지 '전북사학'을 30호까지 발간하면서 지역 사학 발전의 토대를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 학회는 현재 약 24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으며, 격월로 임원회의와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고 있다. 매 발표회에 실제로 참여하는 인원이 항상 30명이 넘는다. 대부분의 역사관련 학회가 주로 대학교수나 강사들로 구성되어 있는 데 비해 전북사학회는 대학교수, 강사는 물론 학예사, 연구원, 중등학교 역사담당교사 등 역사와 관련된 다양한 구성원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대학에서 연구한 역사학에 관한 이론을 중등학교 교육 현장에 올바로 적용하여 이론과 실제를 하나로 만들려는 것이 향후 전북사학회의 지향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전북사학 [JEONBUK SAHAK ; The Jeonbuk Historical Journal]
  • 간기
    연3회
  • pISSN
    1229-2001
  • 수록기간
    1977~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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