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y do we work and heal us? Physical activity has been devaluated after Plato and Aristotle. Labor was an original sin in Judish-Catholic situation, but changed into a mission with the Renaissance and Reformation. After the 17th Century, modern meaning of labor was regarded as the source of scientific technology and the proprietary rights. Labor, however, will be one of the rights in the future, so Basic Income, as an alternative idea, is on the rise. The communist China accepted capitalism. At the same time, the problem of unequality was rationalized by theory of Partial Wealth. The way to Common Wealth is faraway. While general capitalism received democracy, Chinese Communist Party still maintained dictatorship. Confucian socialism has a goal, but does not show us practical methods. China wants to give up the thoughts of Mengzi and Zhuxi, and hold the course of Xunzi and Wangfuzhi, however, has not abandoned Chinese nationalism yet. What China needs is not nationalism but democracy. Philosophical therapy is not medical treatment. It aims at normal person who is in agony for a problem of life. Philosophical therapy is also called as philosophical practice, clinical philosophy, or philosophical counseling. It treats ontological and axiological problems related with oneself and society. The intention is very important because the meaning of life is relative. Philosophers help clients find the way to forward his/her own direction concerned with normative rules and system of virtues. Plato is not Prozac. Zhuangzi consoles us with fables. Because Korea is an overlabor society, we require care. Labor addict is a terror to oneself. While labors internalize labor into themselves, they identify themselves with results and achievements. Poor compensation drive people to a work, shopping, and alcohol to fill their emptiness. An excessive affirmation let them regard all problems as their faults, simultaneously with hypochondria. A philosophical therapy help clients to be a master of their soul, and to expand their view for social structure. In the early industrialization age, we were deprived of 'the right of idleness', but now, we are postulated 'the duty of idleness' for our lives, arts, and companions. Korean society is not full of 'comfortable laziness', but full of 'precarious laziness'. We became a 'precariat'. We need inner cultivation, though. Futhermore, problems of value, destiny, and well-dying for the Silver Age become fields of philosophical practice.
한국어
우리는 왜 노동하고 왜 치유하는가? 육체활동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평가절하되 었다. 유대기독교적 상황도 비슷하여 노동은 원죄이었는데,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시기에 이르러 소명으로 취급된다. 17세기 이후 근대적 노동개념은 진보를 향한 과학기술과 소유권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다. 헤겔과 마르크스는 노동을 통해 자유를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미 래에는 노동이 권리가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서 그 대안으로 기본소득론이 대두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면서 불평등을 일부 부유론으로 합리화했다. 그 러나 공동 부유의 길은 멀다. 차라리 자본주의처럼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면 일관되지만, 여전히 정치체제는 공산당독재다. 유교사회주의에는 목표는 있지만 실천방법이 없다. 중국은 맹자와 주 자의 방향이 아닌 순자와 왕부지의 방향으로 가고자 하지만 중화민족주의를 버리지 않는다. 중 국에 필요한 것은 민족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다. 철학치료는 약을 먹어야 하는 의학치료가 아니다. 삶의 문제로 고민하는 정상인이 그 대상이 다. 철학치료는 철학실천, 임상철학, 철학상담으로 불리며, 자아와 사회와 관련된 존재론적이고 가치론적 문제를 다룬다. 삶의 의미는 목적에 따라 상대적이기에 지향성에 기반을 두고, 내담자 가 자신의 방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규범이나 덕의 체계와 관련하여 성찰하도록 돕는다. 플 라톤은 프로작이 아니다. 장자는 우화로 사람을 위로한다. 한국은 과노동사회다. 과노동에 지친 우리는 치료가 필요하다. 노동중독증은 사람이 자신에 게 행하는 테러다. 노동자는 노동을 내면화하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 자체와 동일시하여 성 과와 업적 중심으로 살게 된다. 노동에 대한 보상이 적을 경우, 공허한 자기내면을 채우기 위해 노동중독, 쇼핑중독, 알콜중독으로 빠진다. 긍정성의 과잉은 모든 문제를 자신이 성취 못한 것으 로 돌려 우울증을 일으킨다. 진정한 치유는 사회구조를 볼 수 있게 인식을 확장시켜야 한다. 마 침내는 내담자가 영혼의 주인이 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산업화초기에 우리는 ‘게으를 권리’를 박탈당했지만, 이제는 삶과 예술 그리고 동료를 위한 ‘게으를 의무’가 요청되고 있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편안한 게으름’은 없고 ‘불안한 게으름’만이 가득하다. 우리는 일용잡부로 전락했다. 그럼에도 내면을 위한 수양공부는 필요하다. 아울러, 노 년시대의 가치관, 운명, 죽음의 문제도 철학상담의 주요 분야로 떠오른다.
목차
Abstract 1. 왜 노동하고, 왜 치유하는가? 2. 소외된 노동을 넘어서 3. 포기할 수 없는 사회주의 4. 철학치료의 본질 5. 과노동과 치유 6. 나의 노동과 치유 참고문헌 요약문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