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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의 포도청의 역할과 천주교 순교사 연구
A study on the role of Podocheong(捕盜廳) in the Catholic persecution of the late Chosun & history of the Catholic marty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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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10호 (2013.12)바로가기
  • 페이지
    pp.121-164
  • 저자
    차기진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1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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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research paper is a study on the role of Podocheong in the Catholic persecution of the late Chosun and the witnesses of faith & martyrs focusing on 103 saints and 257 servants of God of the Catholic Church in Korea. Unlike the provisions of Record, Podocheong were involved in the Catholic persecution since Eulmyo(乙卯) persecution(1795). And the Investigation and arrest for Catholics was included in the prohibition of Podocheong within the Period of Sinyu(辛酉) persecution(1801). The Investigation and arrest range for Catholics of Podocheong was confined to the area of Seongjeo-sipri(城底 十쐮). Then its scope was expanded to Gyeonggi-do within the Period of Gihae(己亥) persecution(1839) and was expanded to Chungcheong-do within the Period of Gyeongsin(庚申) persecution(1859∼1860). Next Gyeongpo(京捕) was dispatched to Gangwon-do & North Gyeongsang-do within the Period of Byeongin(丙寅) persecution(1866∼ 1874). In this case the reward system for Pogyo(捕校) has resulted in obsession over the arrest of Catholics. The Catholics who were sent to Podocheong must be endured the suffering of prison life and received the interrogating a criminal and painful punishment. In the process, they must be proved their faith or died a martyr. From Eulmyo to Sinyu persecution 5 martyrs & 31 witnesses of faith among the servants of God were produced. 1819-1838 1 saint & 5 servants of God proved their faith in Podocheong. During the Gihae persecution Martyrs of 15 saints & 6 servants of God and witnesses of faith of 54 saints & 1 servants of God were produced from Podocheong. During the Byeongoh(丙午) persecution(1846) 7 saints martyred in Podocheong and 2 saints proved their faith in the same place. During the Byeongin and 1878-1879 persecution 17 servants of God martyred and 13 saints & 15 servants of God proved their faith in Podocheong. The significances of Podocheong in the history of the Catholic Church are as follows: First, Podocheong was the first and last site of martyrdom in Seoul. Second, Podocheong had a lot of martyrs(22 saints & 28 servants of God) next Seosomun(西小門) execution ground(44 saints & 26 servants of God). Third, Podocheong was the maximum witnesses’site which produced 122 witnesses of faith(70 saints & 52 servants of God) in Korea and was connected Seoul & province execution ground because of witnesses of faith. Fourth, Podocheong was the maximum martyrs’ site in Seoul since Byeongin persecution.
한국어
본 연구는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 과정에서 서울의 좌·우포도청이 한 역할을 살펴보고, 103위 성인과 ‘하느님의 종’ 257 명을 중심으로 포도청 증거자와 순교자들을 박해 시기별로 조사해 본 것이다. 기록상의 규정과는 달리 포도청에서는 을묘 박해(1795년) 때부터 천주교 박해에 개입하였다. 또 1801년의 신유박해기에 와서는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기찰·체포가 포 도청의 금조(禁條)에 수록되었다. 신유박해 때까지 포도청의 기찰·체포 범위는 성저십리(城底十쐮) 지역에 국한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1839년의 기해박해 때는 그 범위가 경기도까지 확대되었고, 1859∼1860년의 경신박해 때는 충청도 지역까지 확대되었다. 이어 1866∼1874년 의 병인박해 때는 강원도 일부와 경상도 북부 지역까지 경포(京捕)들이 파견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때 포교들에 대한 포상 제는 그들이 경쟁적으로 천주교 신자 체포에 집착하는 결과를 낳았다. 포도청으로 압송된 신자들은 고통스러운 옥살이를 겪으면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했으며, 그 과정에서 신앙을 증거하 거나 순교하였다. 을묘박해에서 신유박해(1801년) 때까지 포도청에서는‘하느님의 종’순교자 5명과 증거자 31명이 탄생하 였다. 이어 1819∼1838년에는 성인 1명과‘하느님의 종’5명이 이곳에서 신앙을 증거하였다. 1839년의 기해박해 순교자는 성인 15명과‘하느님의 종’6명이었고, 신앙 증거자는 성인 54명과‘하느님의 종’1명이었다. 1846년의 병오박해 때는 7명의 성인이 포도청에서 순교했으며, 2명의 성인이 신앙을 증거하였다. 1866∼1874년의 병인박 해기와 1878∼1879년의 무인·기묘박해 때는‘하느님의 종’17명이 포도청에서 순교하였고, 성인 13명과‘하느님의 종’15명이 신앙을 증거하였다. 천주교회사에서 포도청이 갖는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울의 첫 번째 순교터이자 마지막 순교터라는 데 있다. 둘째, 포도청은 서울에서 서소문 밖 형장(성인 44명, 하느님의 종 26명 순교) 다음으로 많은 순교자(성인 22명, 하느님의 종 28 명)가 탄생한 순교터였다. 셋째, 포도청은 성인 70명과‘하느님의 종’52명 등 122명의 증거자를 탄생시킨 한국 최대의 신앙 증거터였고, 신앙 증거자들을 통해 서울 및 각 지방의 형장과 깊이 연결되어 있었다. 넷째, 포도청은 1866년의 병인박해 이후 서울의 최대 순교터가 되었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천주교 박해와 포도청의 역할
  1. 포도청의 박해 개입 시기와 배경
  2. 기찰·체포 지역의 확대 과정
  3. 천주교 신자들의 체포·투옥과 형벌
 Ⅲ. 박해 시기별 포도청 순교사
  1. 을묘∼신유박해기
  2. 1819년∼기해박해기
  3. 병오박해기
  4. 병인∼기묘박해(己卯迫害)기
 Ⅳ. 포도청 순교사의 교회사적 의미
 Ⅴ. 맺음말
 참고문헌
 부록
 〈Abstract〉

저자

  • 차기진 [ Cha, Ki-jin | 양업교회사연구소 소장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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