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nam Jongheon (1876-1956) holds a very important position in the history of Korean Buddhism and the Movement to Purify Korean Buddhism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He reconstructed Baekyangsa Temple, which had fallen into disregard under Japanese colonial rule, a move that greatly facilitated the development of Buddhism in the Honam area. He was also very active with in the Central Council of Buddhism. Despite the important role played by Manam, studies on his life and achievements have to date been very limited. In particular, no research has been conducted on Manam’s life. In this regard, the present study seeks to lay out the events that marked Manam’s lifetime in a detailed manner, and to highlight Manam’s image of shramana (a Buddhist monk who wholeheartedly practices to reach enlightenment). This study separated Manam’s lifetime into two phases, especially to the year 1927 : the establishment of Gwangseonguisuk and his participation in the Imje School movement; the construction of Baekyangsa Temple. As a result of the movement to purify Korean Buddhism that commenced in 1954 Manam came to be misperceived as an individual who symbolized the sangha of married Buddhist monks (daecheoseung), a belief that was in reality not in keeping with Manam’s essential nature. As such, various studies on the relationship between Manam and the Movement to Purify Korean Buddhism are still needed; to this end, it is hoped that this study can serve as an effective starting point for such stud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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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암 종헌(1876-1956)은 일제강점기 불교사 및 한국불교 정화운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 고승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피폐한 상황에 머물러 있던 白羊寺를 크게 중창하여 백양사와 호남불교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웠으며, 이 시기 중앙 불교 교단에서도 많은 활동을 하였다. 만암은 광성의숙 설립(1910), 불교전수학교 교장(1928), 중앙불교전문학교 초대 교장(1930) 등을 거치면서 일제강점기 승가교육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또한 1929년 조선불교중앙교무원 교학부장직을 맡은 이후 중앙 교단에서 꾸준한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특히 8․15 해방 이후 불교정화운동 시기에 이르기까지의 10여 년 기간은 만암이 당시 불교계 전체를 주도하는 위치에 서있던 시기로 평가할 수 있다. 만암은 1951년 한암의 뒤를 이어 조선불교 교단의 교정 자리에 올랐으며, 1954년에는 다시 종명을 회복한 조계종의 종정으로 추대되기도 하였다. 이같은 점들만 보더라도 한국 근현대 불교사에서 차지하고 있는 만암의 위상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만암에 대한 학술적 연구는 극히 초보 단계에 머물러 있다. 특히 아직까지 만암의 일대기를 제대로 정리한 연구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어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러한 문제점에 착안하여 이 논문은 우선 만암의 생애를 면밀하게 정리하는데 일차적인 연구목적을 두고 작성되었다. 필자는 이 시기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논문 말미에 「만암 종헌 연보」를 수록하였으며, 이것은 향후 만암 연구에 있어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만암의 일대기 전체를 한 편의 논문에서 다루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이 논문에서는 백양사 제1차 중창불사가 회향되는 1927년의 의미를 중시하면서 만암이 이 시기까지 보여주었던 활동 내용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하였다. 본문은 1927년까지의 활동을 ‘출가 및 수행’ ‘광성의숙 설립과 임제종 운동 참여’ ‘백양사 중창불사’ 등의 세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구성하였으며, 1928년 이후부터의 만암 활동은 향후 별도의 연구를 통해 살펴볼 예정이다. 1954년부터 본격화된 한국불교 정화운동 과정을 거치면서 만암은 한때 대처승 교단을 대표하는 인사처럼 오인되는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물론 만암이라는 승려의 본질과 전혀 관계없는 일이었다. 만암과 한국불교 정화운동의 관계에 대해서는 앞으로 보다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어야 하겠지만, 이 논문이 이같은 연구의 활성화에 일정 부분 기여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목차
한글요약 Ⅰ. 머리말 Ⅱ. 출가 및 수행 Ⅲ. 廣成義塾설립과 임제종운동 참여 Ⅳ. 백양사 중창불사 Ⅴ. 맺음말 만암 종헌 연보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만암 종헌광성의숙임제종백양사백양사 중창불사백양사의 사격만암 종헌의 연보Manam Jongheon(1876-1956)Baekyangsa TempleGwangseonguisukImje School movementthe Movement to Purify Korean Buddh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