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특집논문: 고려시기 독도ㆍ울릉도ㆍ동해를 포함한 영토 해양 정책과 인식

고려 문종대 女眞의 동향과 고려 영토
The Relationships Between the Movements of Jurchen and the Territories during King Moonjong’s reign in Goryeo
고려 문종대 여진의 동향과 고려 영토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숭실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0집 (2013.06)바로가기
  • 페이지
    pp.79-107
  • 저자
    신수정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201765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9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is a research on the relationships between Jurchen’s tendencies and Goryeo’s territories during the King Moonjong’s reign. In Goryeo, the reign of the King Moonjong was considered as the time of peace peaceful and strong the inside and outside of the country in late 11 century. However, sometimes Eastern Jurchen people invaded through the East Sea and the border line, so they were annoyances to Goryeo. To defeat them, Goryeo government prepared good systems such as strong castles and powerful military forces. Eventually, the numbers of invasions deceased quickly, and the area and scale of damage reduced. On the other hand, the Eastern Jurchen people brought a tribute such as horses or local products to have good relations with Goryeo. They were well treated with amities by the Goryeo government, so the numbers of Eastern Jurchen people who were naturalized in Goryeo increased more, compared to previous reigns. Some Jurchen people asked to live in Goryeo’s land. In addition, even some tribes asked their lands to be admitted as Gimi-ju’hyun unities which mean provinces under indirect ruling by Goryeo. Therefore, the territory became wider and the power of influences became stronger towards the Eastern Juchern. In conclusion, Goryeo government during the King Moonjong treated the Jurchen people in a carrot -and- stick policy, so their invasions decreased quickly, but the ties of amities became stronger. Eventually, Goryeo obtained the power of influences and the bigger size of land.

한국어
이 논문은 고려 문종대 여진의 동향과 고려 영토와의 관계를 살핀 것이다. 문종에 초점을 둔 것은 이전과 다른 특징이 보이기 때문이다. 문종은 38년간 재위했는데, 그동안 여진 특히 동번여진이 고려와 관계를 맺고 있다. 이들은 고려에 침입해 왔지만 재위 기간에 비해 횟수는 현저히 줄었으며 적극적 대응으로 피해 규모도 크지 않았다. 반면 고려와 친선관계를 맺으려는 여진의 내조는 크게 증가하여 토산물이나 말 등을 조공하였고, 고려는 이에 대한 대가로 물품을 차등 지급하기도 하면서 작위 수여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여진이 고려의 지위를 통해 그들 사이에서 우월한 위치에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으므로, 당시 여진 사이에서 고려의 높은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귀화한 여진도 잘 포용하여 고려인과 혼거하게 하면서 내지나 변경에서 잘 동화하게 하였다. 이와 같이 고려는 침입하는 여진과 친선관계를 맺는 여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하며 고려의 위상을 높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고려는 여진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통해 영토를 보존하면서 그 영역을 넓히는 기회를 만들고 있었다. 침입에 대비하여 성을 수리하거나 쌓아 주민을 보호하면서 군사들로 잘 대처하게 하였기에 피해를 줄였고 국토를 잘 보존할 수 있었다. 또한 친선관계를 맺으려는 여진에 대한 우대로 인해 여진의 내조 및 귀화를 이끌어 내었고, 나아가 그들의 거주지를 고려의 주로 편입시키려는 움직임이 문종 27년 집중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기미주로 수장은 여진인인 자치주였지만 고려의 간접지배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로써 고려는 영토를 확대할 수 있었고 인구도 확보되었던 것이다. 기미주로 편입된 지역은 천리장성 이북으로 그 위치는 정확하지 않지만 함흥을 넘어 길주, 경성까지도 포함되는 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는 이들에 자치권을 주면서 간접지배를 통해 지배 영역을 넓혀 나갔던 점에서 문종대의 여진의 동향과 영토와의 상관관계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목차

I. 머리말
 II. 문종대 여진의 동향
  1. 침입자로서의 여진
  2. 내조 및 귀화 여진
 III. 고려의 영토 보존과 확장
  1. 국토 방어와 안전대책
  2. 기미주 설치 및 고려의 영향력 확대
 VI.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키워드

문종 여진 동여진 영토 귀화 기미지배 영향력 King Moonjong Jurchen tribute Gimi-ju'hyun territory influence invasion

저자

  • 신수정 [ Shin, Soo Jung | 성신여대 사학과 강사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숭실대학교 역사문물연구소(구 숭실사학회) [The Center for History and Human Heritage]
  • 설립연도
    1983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본 학회는 1983년에 조직되어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역사이론, 고고학, 미술사, 과학사 등 역사학과 인접학문의 우수한 논문을 폭넓게 소개하여 역사학 연구자들의 연구역량을 강화하고 회원 상호간의 긴밀한 교류의 장을 만들고자 조직하였다. 숭실사학회에서는 정기적인 학술발표 지속적으로 개최해 왔으며, 연 1-2회에 걸쳐 학술지 '숭실사학'을 발간해 왔다. 앞으로도 숭실사학회에서는 회원들의 연구 활동이 꾸준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며, 보다 정기적인 학술강연회 및 월례발표, 단행본의 출간, 및 답사활동 등을 통해 보다 내실 있는 학회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숭실사학 [SOONG SIL SAHAK(The Historical Review of Soong Sil University)]
  • 간기
    반년간
  • pISSN
    2005-9701
  • 수록기간
    1983~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숭실사학 제30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