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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의 喪葬과 灰隔
Burial Structure of Joseon Dynasty and the Hoegyek
조선의 상장과 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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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중앙문화재연구원 바로가기
  • 간행물
    중앙고고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5호 (2009.12)바로가기
  • 페이지
    pp.25-49
  • 저자
    趙吉煥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98362

원문정보

초록

영어
Joseon adopting Neo-Confucianism as a ruling ideology suggested order of social caste through promulgation of Gyeongguk Daejeon(『經國大典』, Grand Code of Managing the Nation) and enactment of Gukjo Oryeeui(『國朝五禮儀』, The National Five Rites). Literati followed Sangryebiyo(『喪禮備要』, Guidebook for Funeral Rites) compiled in the reign of 26th year of King Injo(1648) and Saryepyeonram(『四禮便覽』, Handbook for four the ceremonial occasions of coming-of-age, marriage, funeral, and ancestor worship) compiled later. A new burial structure called Hoegyek(灰隔) which separated a burial hole and a coffin with making a wall. According to Sangryebiyo and Saryepyeonram, there were three types of burial as follows: 1) the first type using an outer-coffin, 2) the second type tramping earth layer upon layer, and 3) the third type forming a Hoegryek with filling a space between a coffin and a burial hole with earth.
The Hoegyek, a style to prepare a burial platform were considered to be a facility to substitute a stone chamber(or an outer-coffin) before the reign of the King Sejo, and it was applied to kings, officials, and commoners. The Hoegyek, considered a facility to protect the dead fromgrass roots and insects seems to have been recommended as a device to practice filial pietyafter ancestor’s death. Based on excavation reports and a custom handed down, the Hoegyek, had been adopted until the 1980s, and it could be understood as a facility adopted as combined concept of a burial chamber, an outer-coffin, and a filling up.
This study will be a foundation to understand the Hoegyekof pit burials built in the Joseon period which will be reported in future excavations, and it will be also a first step to understand Joseon’s funeral rites based on Neo-Confucianism in a general sense.
한국어
조선은 성리학을 사회통치이념으로 채택하고, 經國大典 반포와 國朝五禮儀를 제정하여 신분질서를 제시하였다. 사대부는 仁祖 26(1648)年에 간행된 喪禮備要와 이후에 편찬된 四禮便覽을 따랐다. 이에 따라 탄과 삼물(石灰․細沙․黃土 拌均者)을 이용하여 관을 넣을 수 있게 장(墻)을 만들어 광과 관을 구별짓는 회격(灰隔)이라는 새로운 무덤양식이 지배층의 묘제로 채택된다. 상례비요와 사례편람에서 ①곽을 사용한 방식, ②층층으로 다진 방식, ③내부에 흙을 넣어 회격을 조성하는 방식 등이 확인된다.
회격은 조선시대 무덤의 매장주체부를 형성하는 하나의 양식으로, 세조 이전까지 지배층에서 채택한 석실(곽)을 대체하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지는데, 왕과 대부사서인에게 모두 적용된다. 이러한 인식의 토대에는 회격이 온전히 돌이 되어 시신을 풀뿌리와 벌레 등으로부터 지킬 수 있다는 장점에 의해 사후(死後)의 효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으로 지배층에 권장된 사항으로 판단된다. 회격은 유풍(遺風)과 발굴조사를 통하여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 고래로 내려오는 실․곽․충전 등이 복합된 개념으로 수용된 것이다.
본 연구는 추후 발굴조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많은 조선시대 토광묘의 회격을 이해하는 한 단초가 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조선의 성리학적 상례에 대한전반적 이해의 첫걸음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목차

요약
 Ⅰ. 머리말
 Ⅱ. 朝鮮時代 身分制
 Ⅲ. 喪禮와 喪葬節次
  1. 喪禮節次
  2.『禮記10)』
  3. 國家에 依한 喪禮整備
 Ⅳ. 灰隔
  1. 朝鮮時代 무덤構造
  2. 作灰隔
  3. 加灰隔과 實以灰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趙吉煥 [ 조길환 | 중앙문화재연구원 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중앙문화재연구원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설립연도
    2000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문화재의 보호, 관리, 조사, 발굴 및 그 활용과 전국 매장문화재 발굴조사 전담법인기관과의 유기적인 협력체제 유지를 통하여 민족 문화의 보존ㆍ보급ㆍ선양ㆍ전승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한다. 1970년대부터 국토개발사업이 본격화 되면서 현대생활의 편리성을 추구하는 각종 대규모 토목공사가 계획ㆍ진행되고 있으며, 이러한 대규모의 토목공사는 땅의 형질변경을 수반함으로 인해 문화유적의 훼손과 파괴를 초래한다. 1990년대 초까지의 매장문화재 조사는 국립박물관, 문화재연구소, 대학박물관 등에서 주도하여 왔으나 매년 증가하는 문화재조사 수요를 감당하기 힘든 실정으로 사업시행의 지연과 문화재관련 학술자료획득의 양면에서 막대한 차질을 빚게 됨에 따라 매장문화재 전담법인기구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이에 따라 상시 문화재조사 체제를 유지하며, 문화재조사와 관련하여 사업시행자의 손실을 최소화하고, 긴급발굴에 따른 졸속 발굴 등을 예방하여 철저한 학술자료 획득 및 전문인력의 양성을 통한 전반적 발굴수준의 향상을 위하여 중앙문화재연구원이 설립되었다.

간행물

  • 간행물명
    중앙고고연구 [Journal of Central Institute of Cultural Heritage]
  • 간기
    연3회
  • pISSN
    2233-6230
  • 수록기간
    2005~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911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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