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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

조선총독부의 영상매체 정책
The film media policy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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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중인문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한중인문학연구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37집 (2012.12)바로가기
  • 페이지
    pp.323-350
  • 저자
    박순애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91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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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research analyzed the establishment process of mass culture in modern Korea. Specifically, it examined the analysis of the process of forming a public movie, what kind of things were influences for the film control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how the media policy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was accomplished, and the analysis as to the type of entertainment the movie was for the Korean society. In this study, it became clear how movies became the mass culture in Korea. The early movies were like avant-garde art, a foreign culture that city’s tag, rag, and bobtail enjoyed. With the construction of the movie theater, movies gradually became a mass culture. Since the Japanese historical movie was not a preference for the Koreans, the Korean public primarily enjoyed Western movies. However, Western movies, which became the entertainment for Koreans, were declined under the control known as the domestic film duty screening of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Though much more movie fans were formed by the arrival of the talkie times than ever before, ironically, the arrival of the talking film times brought a result rather to take the movie entertainment away from the Koreans. As the Japanese superimposed on Western movies via their Japanese use policy, the governor-general’s office forced the Western movies out, and consequently, movies were no longer forms of entertainment for the Koreans who did not know Japanese language. However, the arrival of the talkie times brought about the modernization of the movie theater and as a result, movies were highlighted as mass culture enjoyed by intellectuals, such as elites, teachers, and students. In a comfortable environment, they were able to enjoy movies that were produced for war mobilization. 80% of Koreans were farmers, and therefore, most Koreans, with exclusion of a few citizens, were in a state that was remote from the movie culture. Judging from such circumstances, it may be stated that the media policy of the governor-general’s office succeeded in its movie policy in the Korean colony.
한국어
본 연구는 대중문화의 성립과정과 조선총독부의 영상매체통제와의 사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연구이다. 영화매체 대중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 그리고 대중문화로서 영화가 수용되어지는 과정에서 총독부의 영화통제가 조선인의 영화 관람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영화는 조선인에게 어떤 매체였는가, 그리고 조선총독부의 정책은 어떻게 달성되었는가에 대한 과제를 문화적인 분석을 중심으로 접근한 고찰이다. 이 연구에서는 영화가 어떻게 조선인의 대중문화로 다가오게 되며 일본통치기 조선인이 많이 관람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인식된 일본영화는 오히려 조선인에게 환영받지 못했던 사실 들을 확인했다. 초기영화 관람은 도시하층민이 즐기는 외래문화로 아방가르드적인 전위예술과 같은 것이었다. 전문영화관의건설로 인하여 영화는 대중문화로 점차 자리 잡게 되었고 조선의 대중은 서양영화를 즐겼다. 일본의 시대극들은 조선인 취향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선인의 오락으로서의 서양영화는 조선총독부의 국산영화 의무상영이라는 통제 하에 쇄락하여 갔으며 토키시대의 도래로 이전보다 훨씬 많은 영화 팬이 형성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컬하게도 토키영화의 도래는 오히려 조선인으로부터 영화오락을 빼앗아가는 결과를 가져온다. 총독부의 일본어 상용정책은 서양영화에 일본어자막을 넣도록 했고 일본어를 모르는 조선인에게 영화는 오락이 아니었다. 그러나 토키시대의 도래는 영화관의 현대화를 가져왔고 그 결과 엘리트, 교사, 학생들과 같은 지식층에게는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즐길 수 있는 대중문화로 부각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식민지 영화정책에서 총독부의 미디어믹스정책은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일본어사용, 전쟁동원을 위한 내용 등으로 만들어진 일본영화를 지식층에게 자발적으로 즐기게 하는 오락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선인의 80%는 농민이었고 소수의 도시인을 제외한 조선인의 대부분이 영화는 물론이고 문화라는 것으로부터 소원(疎遠)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목차

요약
 1. 서론
 2. 초기영화의 관람
  1) 초기영화의 관람 층
  2) 대중문화로서의 영화
 3. 한국인의 영화관(觀)
  1) 한국인이 즐겨 본 영화
  2) 토키영화시대의 도래와 총독부 영화검열
  3) 토키영화시대의 무대극
  4) 영화관의 현대화와 지식인층의 영화관람
  5) 뉴스영화 전성시대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조선총독부 영상매체정책 영화 대중문화 오락 the Government General of Korea media policy entertainment mass culture film media policy

저자

  • 박순애 [ Park, Soon-Ae | 호남대학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설립연도
    1996
  •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간행물

  • 간행물명
    한중인문학연구 [Studies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 간기
    계간
  • pISSN
    1598-0383
  • 수록기간
    1996~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001 DDC 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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