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삼국시대와 고려 등 고대 왕조 시대부터 중국 왕조와 서적을 교류해 왔으며, 이에 대한 기록이 고려사, 삼국사기와 같은 역사서 비롯하여 각종 문집과 현전하는 간행본 및 飜刻本{의 간행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대체로 조선시대 이전의 기록은 그 건수가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이 매우 단편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 기록의시간적 공백이 크면서 그나마도 특정 류의 서적, 예를 들어 불경에 관한 기록에 밀집되어있다. 이러한 기록상의 특징 때문에 서적교류에 관한 통시적 고찰은 물론 공시적 고찰에 있어서도 일정한 한계를 지닌다. 따라서 한중 서적교류의 내용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서적의 상태와 현황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실물자료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 이 연구는 동아시아 서적교류를 바탕으로 한 인쇄문화사적인 연구의 일환으로 조선조에 유통되었던 원간본과 그 번각본에 대하여 특정 서책을 대상으로 삼아 서지학적 검토를 시도하는 것이다. 중국 平陽 張存惠가 편찬한 『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는 송나라 唐慎徽가 짓고冦宗奭이 수정한 經史證類大全本草』와 함께 동아시아에서 유통된 대표적 약물학 서적이다. 이 책의 초기 간본은 몽고 정종4년(1249)에 晦名軒에서 간행한 간본과 서림청화』에 수록된 대덕6년(1302)에 宗文書院 간본을 들 수 있다. 종문서원간본은 실물이 없어 판식을 확인할 수 없으나, 회명헌 간본은 “사주쌍변, 11행 21-22자, 상하하향흑어미”로 이루어져 있다. 국내에는 이 책이 선조10년(1577)에 조선의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인출되었는데 이 인본의 판식은 “사주쌍변, 10행 19자, 흑구, 내향 2엽화문어미”이다. 회명헌 간본과 비교해보면 자체나 음각 및 삽도의 판각방식이 상당히 유사하지만, 항자수나 어미의 모양을 달리하였고 특히 행과 자간을 넓혀 글자를 좀 더 크고 여유롭게 배열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유사한 판형과 형식을 보이는 약물학 서적으로서 『重修政和經史證類備用本草』를 대상으로 삼고 조선에서 금속활자인 을해자로 간인한 서적을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