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는 동양예술의 여러 장르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동양의 사유와 문화의 특징을 가장 많이 內含하면서 가장 잘 표현해 주는 대표적 예술로 일컬어진다. 서예는 동양의 사유와 문화의 창조실존형식이라 할 수 있는 음양ㆍ유무ㆍ흑백ㆍ허실 등 상반적인 모순대대요소의 조화ㆍ통일을 통해 내적 생명의 미적 존재 차원을 표현해내는 일종의 心象 예술ㆍ意象예술이면서, 이들 조화 통일이 구현해내는 심상 의상의 미는 필경 합규율성과 합목적성의 조화 통일이요, 필연과 우연의 조화 통일이요, 자유와 절제의 조화 통일이라는 점에서 和美 또는 조화미의 예술이기도 하다. 서예는 이상과 같은 속성과 특징을 내함하고 있으므로 하여, 지극히 순수하고 높은 차원의 경지에 진입한 서예가는 스스로가 창출해 내는 갖가지 자유로운 서예형식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기도 하고, 때로는 상상력의 격발에서 활성화되는 환상을 통해 해탈에 이르기도 하고, 때로는 환상의 끝없는 확대를 통해 불합리한 현실을 부정하기도 하고, 때로는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달관해 내기도 한다. 서예창작의 생명이 氣韻生動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성실성과 진지성이 상실된 방자한 붓질에서 나온다고 오해해서는 안 된다.그리고 외형적인 姸美와 淡泊美등을 연약한 것으로만 이해하고, 그로부터 벗어나는 자연미ㆍ醜拙美ㆍ雄渾美 등을 창출시키고자 붓의 收起와 운행길로부터 과도하게 벗어나서도 안 된다. 자연스럽게 오가고 들고나는 붓의 바른 길 속에서 무리 없이 이루어진 것임을 알아야 하겠다. 사실 송대 서예의 특징은 “意”를 尙意했다는 점이며, 미불은 이러한 서풍을 기본으로 하였다. 미불은 어렸을 때에 어머니의 출신의 이유로 좋은 작품의 진적을 많이 보고 자라면서 훌륭한 식견을 가져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지방관 시절에 많은 명사들과 만나볼 수 있는 기회를 가져서 또한 풍부한 인적 교유와 관점의 확대를 가졌다. 그의 이러한 행적 이면에는 당나라 복장을 착용하고, 지나친 결벽증과 돌과 서화에 대한 집착이란 이면이 따라 다닌다.그리고 그의 학서 과정은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데 안진경을 시작으로 하여 구양순, 유공권, 저수량, 심전사 등을 배워나갔다고 자술하였는데, 이것 이외에도 당연히 二王의 글씨를 포함하여 많은학습을 하였다는 것을 우리는 확연히 이해할 수 있다.미불은 이와 같은 법고의 과정을 통하여 새로운 자기만의 서풍을 만들어 갔는데,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은 “趣”를 중하면서도 無意做作의 평담미를 중시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상당수는 이를 노장의 무위자연에 따른 예술의 자유성 강조를 근거로 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