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개항기 갓등이 본당의 성립과 지역사회의 복음화
Establishment of Gatdeung'i Parish and Evangelization of Local Society in the Opening Port Period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수원교회사연구소 바로가기
  • 간행물
    교회사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9호 (2012.12)바로가기
  • 페이지
    pp.63-93
  • 저자
    조현범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90667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2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was written for seeking some answers to the question, "what did the French Catholic missionaries in Gatdeung'i area for 26 years; beginning in 1888 when Fr. Jacques André(安學古, 1861-1890) was sent to Gatdeung'i for the first time in the name of parish priest, closing in 1914 when Fr. Charles Le Gac(郭元良, 1876-1914) the fifth priest of Gatdeung'i parish died from typhoid?" At that time Korea experienced an enormous confusion from mental anomie to social and institutional disorder. Western countries threatened Choseon government to open the major ports for trade. Worse still Japan which had been forced to open doors to the western world by the United States succeeded in the industrialization of its own country to grow an imperialist ambition to colonize Korean peninsula. But for the part of Korean Catholic Church that acquired a religious freedom in the same time, was taken place an unprecedented development in the number of priests and laymen, schools, hospitals, and others various ecclesiastical establishments. In this respect Gatdeung'i parish was not exception. The active, sometimes aggressive evangelical movement of French missionaries animated the faithful life of Gatdeung'i christians and increased the external appearances. Among the religious situations of Catholic Church in Gatdeung'i society, we took notice of some matters as follows: after the cessation of the everlasting persecutions for one hundred years, when Korean Catholic Church enjoyed a religious liberty, which kind of evangelical method did French missionaries choose in Gatdeung'i? how did they administrate Catholic sacraments? As we know it, education and social welfare activities are the effective method for gaining the public confidence from regional population. If so, how was the task of 'Sainte Enfance' in Gatdeung'i? Lastly if a parish priest resides in that area to care the spiritual life of the laics, it is needed some considerable resources. To this problem what did French missionaries devise as a solution measure? All the Korean Catholic parishes in that time had these problems commonly. Therefore by searching the case of Gatdeung'i Catholic community, we could reach to the typical aspects of Korean Catholic Church in the Opening Port Period.
한국어
이 글은 앙드레 신부가 부임한 1888년부터 르 각 신부가 선종한 1914년까지 약 26년 동안 프랑스 선교사들이 갓등이 지역에서 어떠한 활동을 펼쳤는가 하는 점을 다루었다. 당시는 개항에서 일제 강점에 이르는 격동기였으며, 100여 년에 걸친 박해에서 벗어나 새로운 성장을 준비하던 조선 천주교회 역시 안팎으로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였다. 갓등이 지역에서 상주하던 프랑스 선교사들은 교우들의 성사생활을 돌보면서 적극적인 선교 활동을 벌임으로써 교세를 확대해나갔다. 이에 따라서 갓등이 교우들의 신앙생활은 활기를 띠었고, 교세도 크게 늘어났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펼쳤던 사목활동들 가운데에서 전교활동, 성사활동, 성영회 사업, 재정활동에 주안점을 두고 논의를 진행하였다. 전교활동에서는 교리서 및 기도서의 배포를 통한 전교 및 예비 교우들의 입교 절차 그리고 개종과 관련한 교훈적인 이야기 등을 선교사들의 서한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성사활동에서는 세례성사 및 견진성사의 실제 진행 양상을 살펴보고, 특별히 혼배 문제와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을 구체적으로 소개하였다. 그리고 개항기 조선 천주교회의 사회복지활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성영회 사업이 갓등이 본당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실행되었는지 그 내용을 검토하였다. 마지막으로 갓등이 본당에서의 복음화 활동을 뒷받침하기 위한 재정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하여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에 대해서도 논하였다. 하지만 갓등이 선교사들의 활동상 가운데 제대로 다루지 못한 부분들도 많이 남아있다. 가령 천주교 교우들과 지역사회 주민들 사이에 분쟁이 벌어졌던 사례, 선교사들이 이 분쟁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서울의 뮈텔 주교에게 사태의 진상을 보고하여 외교적 통로를 활용하여 분쟁을 해결하였던 과정 등도 선교사들의 서한에 자주 등장하는 내용들이다. 이에 대한 분석은 개항기 천주교회의 성향을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작업이 되리라고 본다. 또한 개항기 갓등이 교우들의 육성을 제대로 담아 내지 못한 점도 이 글의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순회 회장 제도, 예비 교우 입교식이나 개종담 등을 논하면서 간혹 조선인 교우들의 활동이나 신앙생활을 부분적으로 소개하였기는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술을 프랑스 선교사들의 서한 자료에 의존하다 보니 선교사들의 활동만 부각되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조선인 교우들의 존재가 교회생활의 객체 또는 수동적인 선교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앞으로의 연구 과제를 꼽자면 교회사 기록 속에 뚜렷이 족적을 남기지 않았던 수많은 갓등이 교우들의 신실한 삶과 열성적인 신앙을 복원해내는 일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목차

Ⅰ. 서론
 Ⅱ. 전교활동
 Ⅲ. 성사활동
 Ⅳ. 성영회 운영
 Ⅴ. 재정활동
 Ⅵ.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조현범 [ Cho, Hyeon Beom | 한국교회사연구소 책임연구원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 설립연도
    2003
  •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5377
  • eISSN
    2713-6027
  • 수록기간
    2004~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36 DDC 230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교회사학 제9호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