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조인간, “헐벗은 생명,” 포스트/휴머니즘: 메리 쉘리의 『프랑켄슈타인』과 카즈오 이시구로의 『날 보내지 말아줘』에 나타난 고아와 인간
Monster, Bare life. and Post/Humanism: Orphan and Humanity in Mary Shelly’s Frankenstein and Kazuo Ishiguro’s Never Let Me Go
This paper explores the contradictory and entangled dynamics between the concept of ‘humanity’ and the modern nation-state through the figure of ‘orphan.’ Orphan is a site where the way the western tradition of philosophy has conceptualized the category of ‘human’ is most clearly revealed. Artifical intelligence such as robot, cyborg, or humanoid is a good example of orphan, showing its role in the construction of ‘humanity’--especially, the ‘citizen’, the modern version of humanity. Mary Shelley’s Frankenstein articulates the fundamental paradox in the idea of ‘human,’ ‘family,’ and ‘modernity’ through the problematic existence of monster. Monster is the most vulnerable and helpless kind of orphan—he is a “bare life” in Agamben’s expression. At the same time, however, he is the one who makes human an orphan through the very problematic nature of his being. Kazuo Ishiguro’s Never Let Me Go describes the global condition where orphans are mass-produced to sustain human life and well-being. Here clone, modern version of monster, is a good example to show that the modern power both protects and persecutes life and that the global articulation of ‘humanity’ is irrelevant to the reality of ‘bare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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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고아’에 얽힌 이러한 모순에 초점을 두면서 고아가 ‘인간’이라는 범주에 대해 제기하는 인식론적인 의미와 정치사회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그 의미들 간에 발생하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역학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논의에 ‘인조인간’은 매우 적합한 대상이다. 이는 (인간이 아니라) 인조인간이 야말로 ‘고아’라는 정체성을 존재론적 차원에서 온전히 전유하는 존재이기 때 문이다. ‘고아’가 될 수 없는 인간을 대신해서 ‘고아’라는 인간의 실존적 조건 을 뒤집어쓴 인조인간과 서구 사상, 정치 지평의 관계를, 먼저 아감벤의 논의 를 빌어 이론적인 차원에서 살펴볼 것이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1. ‘인간’의 근원에 놓인 부정(negativity): 고아 2.『프랑켄슈타인』: 고아-아버지-아들, 그리고 ‘근대시민’의 모순 3.『날 보내지 말아줘』: 국가권력의 글로벌한 재편과 포스트/휴먼 II. 나가는 말 Abstract
키워드
고아인간근대국민국가프랑켄슈타인이시구로orphanshumanitymodern nation-stateFrankensteinNever Let Me Go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