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orphan” may seem as objective and universal as possible a category, because such designation stems from existential crisis. Yet such apparent universality, even if it were true, does not translate into any historical insights. It is rather fruitful to follow many different names given to orphans and try to understand the power-knowledge network(s) behind them. This paper traces such different names in the French context that is understood as an amalgam of multifarious and sometimes contradictory practices. Adjectives like exposé, abandonné, and assisté reveal specific ways, in which the respective power-knowledge understood orphans. Each of the epochal moments, such as the absolute monarchy, the French Revolution, the bourgeoning Bourgeois society and the Third Republic, constituted and reconstituted orphans. Modernity may seem only possible comprehensive framework but such postulation is also internally contradictory. Modern social and political theory is premised on the modern individual, who should be considered potential and potent orphan, while modernity as a system of practices has constantly dissolved, reappropriated and reinvented orph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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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근세에서 20세 기 초반에 이르는 시기 프랑스의 고아 문제에 대한 인식과 정책적 대처를 살 펴보고 여기에 담긴 고아의 정치성을 규명하고자 한다. 따라서 이 논문은 전 통적 의미에서의 프랑스 사 연구라고 할 수 없으며 이 논문의 핵심적인 관심 은 프랑스로 추상할 수 있는 근대-국가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라는 국 가적 맥락은 다양한 국가-효과(state effects)와 실천의 한 범례로 보아야 한다
목차
I. 들어가는 말 2. 비동시적 근대: "드러난 아이들Les enfants exposés" 3. 고아의 재개념화: “버려진 아이들Les enfants abandonnés” 4. 국가의 아이들: “도움을 받고 있는 아이들Les enfants assistés” II. 나오는 말 Abstract
문화사학회 [The Korean Workshop for the History of Culture]
설립연도
2000
분야
인문학>역사학
소개
한국의 서양사학계는 새로운 학풍을 도입하고 실험하며 우리의 역사학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자임해왔다. 오늘날 서양사학계의 일각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는 선배들의 그러한 노력에 힘입어 우리가 지금 있는 위치에 자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러나 한편 우리는 그들이 공들여 쌓아놓은 울타리 안에 안주할 수만은 없다는 현실에도 인식을 같이 한다. 그 요구는 여러 면에서 감지되고 있다.
첫 번째는 서양사학 내부에서 솟구치는 추동력이다. 두 번째는 인접 학문 분야와의 교류에서 생겨나는 필요성이다. 역사학 내부에서도 한국사나 동양사와의 대화가 단절되어 있거니와, 관련된 학문 분야에서 이룬 결실을 수용하려 하지 않았음은 물론, 다른 학문 영역에서 역사학에 침투하는 것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세 번째는 일반 대중이 서양사에 대해 느끼는 갈증에 연유한다. 우리의 서양사학이 많은 업적을 산출했음에도 불구하고, 때로 대중들의 요구와는 동떨어진, 학자들만을 위한 학문의 장을 열어왔다는 불만스러운 목소리에 우리는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런 여러 목표들을 수렴할 수 있는 공통분모로서 우리는 문화사라는 대안을 상정한다. 우리가 말하는 문화사는 역사학의 특정 분야로서 다른 분야를 배제시키는 개념의 문화사가 아니다. 그것은 침전된 과거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여과 장치이며 역사에 스며든 사람들의 생각을 되살리도록 만들어주는 재생 장치이다. 그것은 역사를 보는 방식이지 역사의 분야가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상정하는 문화사는 다양한 역사가들의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는다.
우리의 시도는 한 마디로 학문적 연대감을 갖는 학문 공동체를 만들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한국에서의 서양사라는 자기모순적인 명제를 넘어서려는 도전이다. 그것은 우리의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가능성의 영역을 넓히려는 자기극복의 도전이다. 이런 논지가 암시하는 바, 우리 역시 언제 누군가에 의해 극복될 것이라는 희망을 품으며 우리는 여기에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