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는 많은 곳에서 구체적이면서 생동감 있는 비유와 寓言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전개한다. 그런데 그 비유와 우언을 통해 말하고자 한 것이 아니었지만 후대의 관점에서 보면 서화창작의 심리상태 혹은 서화창작의 기교와 관련지을 수 있는 내용이 많다. 그 대표적인 것 중 하나가 莊子「田子方」의 참된 화가와 관련된 '解衣般礡 고사와 莊子「養生主」에서 ‘善刀以藏’의 문구가 나오는 庖丁解牛 고사다. 조선조 李德懋의 경우는 해의반박과 포정해우를 예술창작에서의 始條理와 終條理로 이해하였다. 해의반박은 후대 서화가들의 口頭禪과 같은 말로서 예술창작에 임하는 예술가의 마음가짐, 혹은 心理機制와 관련이 있고, 포정해우는 실질적인 예술창작 할 때의 기교운용과 관련이 있다. 禮法이나 법도 등 마음이 어떤 것에도 얽매임이 없는 자유로움 경지를 의미하는 해의반박은 자신의 진정성과 개성을 담아내는 예술창작, 특히 寫意적 예술창작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해의반박은 붓을 처음 잡고 작품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관련이 있고, 그것은 붓의 놀림을 통해 그대로 반영되는 연속적인 과정이 수반되었을 때 보다 기운이 생동하는 작품이 가능해진다. 특히 ‘한 호흡에 작품이 이루어지는 것(一氣呵成)’ 혹은 一筆揮之를 추구하는 서예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회화에서 潑墨法을 통해 寫意性이 강한 작품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포정해우 고사에서는 진정한 기교 운용을 통해 최고 경지가 무엇인지를 道와 관련하여 잘 말해주고 있다. 포정해우의 경우 주의할 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경험을 쌓는다고 해도 天理를 알지 못하면 여전히 칼날은 손상된다. 좋은 작품을 창작하려면 포정이 말하는‘칼날에 두께가 없다’는 것이 갖는 예술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소는 항상 새롭게 주어지고 작가가 창작에 임할 때의 상황도 항상 새롭게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는 무작정 오래 쓴다고 자신의 목적한 바, 즉 소를 칼날이 상하지 않고 제대로 해부할 수는 없다. 그런데 서화의 실질적인 예술창작 행위에서는 해의반박의 始條理와 포정해우의 終條理는 하나이면서 둘이어야지 간극이 있어서는 안된다. 시조리와 종조리가 하나로 일관되게 연결될 때 도 혹은 玄化와 합치되는 심수합일, 천인합일의 예술창작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