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 have been many discussions about the buried people in the Japanese style keyhole-tombs, which were discovered in the 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 This site was one of the regions of the Kingdom Mahan in A.D 369, but it was part of Baekje in the early 6th century when the keyhole-tombs were in their construction so it is quite reasonable to argue that the tombs site was the residual region of Mahan. This region is divided into the three areas of the northern Noryeong mountain range, Yeongsan River and Haenam Peninsula. But the area of the identified key-hole tombs was the residual region of Mahan that Baekje's King Gunchogo conquered crossing Kum River in A.D. 369. It has been known that Baekje's army made a conquest of that region in cooperation with Japanese armed forces at that time. In that sense, the construction of the Japanese key-hole tombs in that historical site could be a clue to understand the personality of the people buried. In relation with this, it has been revealed that the formation of the key-hole tombs began in the early 6th century when Baekje had hard times. After the capital Hanseong of Baekje collapsed, King Dongseong started gathering together influential forces of regions that had broken away from Baekje. Carrying out this work, he at the same time appointed Japanese people to feudal lords who would have the power to control the residual region of Mahan. It has been revealed that the appointed Japanese were offsprings of Japanese generals who fought for the region in A.D. 369 or had relations with Baekje. That is to say, the people buried in the key-hole tombs were the Japanese who had connection with Baekje. Regarding this, Baekje completed successfully its rule of regional area and adopted the new administrative district system of bang-gun-seong. Along with it, Baekje positioned the Japanese feudal lords as officials of the central gover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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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서남부 지역에서 확인된 일본의 표지적 묘제인 전방후원분 피장자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었다. 크게 보아 재지수장설부터 倭系로 지목하는 2종류로 구분할 수 있지만 세세하게 그 성격이 차이가 나고 있다. 13기의 전방후원분 중 단 6기에 불과한 영산강유역 소재 고분으로써 ‘영산강유역 전방후원분’이라는 호칭의 사용은 대표성이 없다. 결국 이들 지역에 소재한 전방후원분 전체를 대표할 수 있는 공통된 호칭을 찾아 보자. 그러면 이 곳은 369년에는 ‘馬韓 殘餘 地域’이었지만, 전방후원분이 조성되는 6세기 전반에는 백제 영역이었다. 그런 만큼 ‘馬韓 殘餘 故地’ 소재라고 하는 게 가장 무난할 수밖에 없다. 본고는 이러한 기본적인 전제를 걸고서 이곳에 전방후원분이 조성된 배경과 그 피장자의 성격을 구명해 보기로 한다. 이곳은 노령산맥 이북과 영산강유역, 그리고 해남반도에 이르는 3개 권역으로 나누어진다. 그런데 전방후원분이 소재한 구간은 369년에 백제 근초고왕이 금강을 건너 평정한 마한 잔여 지역이 된다. 이때 백제군은 왜군과 합동작전으로 이 지역을 석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바로 그러한 유서 깊은 공간에 왜계 전방후원분이 조성된 것은 그 피장자의 성격을 암시해주는 단서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전방후원분의 조성 시점이 백제사에서 艱難의 기간인 6세기 전반으로 밝혀졌다. 한성 함락 이후 동성왕은 이탈해간 지방 세력을 흡수하는 작업을 추진하였다. 그 작업의 일환인 동시에 과거 백제와 왜간의 공동작전의 성과이기도 했던 마한 잔여 지역에 왜인들을 해당 지역에 분봉하였다. 이때 분봉된 왜인들은 369년에 백제가 이곳을 점령할 때 활약했던 倭將들의 후예이거나 백제와 관련을 맺은 가문으로 밝혀졌다. 곧 전방후원분 피장자들은 백제와 연고를 맺고 있는 왜인들이었다. 그럼으로써 근초고왕대 이래 백제와 왜간의 우호를 다지는 한편, 공동의 이익을 위해 지속적으로 운명을 함께하는 관계를 마련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6세기 중엽경에 백제 조정에 왜계 관인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러한 연원은 왜와 수교한 근초고왕 이래 백제에서 왜로의 博士 파견에서 찾을 수 있게 된다. 그런데 한성 함락이라는 비상시국과 고토회복이라는 숙원 사업 속에서 백제와 왜는 이해가 일치하였다. 이때 백제와 왜는 고구려의 군사적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상황에서 공동정권적 체제를 구축하였다. 그랬기에 백제와 왜간의 관인들이 상호 왕래하여 각기의 조정에 배치될 수 있었다. 이와 관련해 백제는 지방 지배를 완료하는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方・郡・城制라는 전면적인 지배 형태로 전환하였다. 이와 맞물려 백제는 분봉했던 왜인들을 조정의 관인으로 전환시켰다. 즉 중앙귀족화시켰던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I. 序論 II. 전방후원분 소재지의 意味 III. 전방후원분 조성 배경 IV. 方·郡·城制의 시행과 倭人 官僚化 V. 結論 參考文獻 Abstract
키워드
전방후원분한반도 서남부 지역마한근초고왕369년백제왜동성왕the Keyhole-tomesthe southwest of the Korean PeninsulaMahanBaekjeKing GunchogoA.D. 369JapanKing Dongseongsystem of bang-gun-seong方・郡・城制
동아시아고대학회 [The Association Of East Asian Ancient Studies]
설립연도
1999
분야
인문학>기타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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