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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사회생물학이 문제인가?
Why sociobiology is a prob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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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9집 (2012.06)바로가기
  • 페이지
    pp.1-22
  • 저자
    정세근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77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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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paper aims to prove a proposition that the theory of evolution is not a teleology. The difference between Darwin and Lamarch is not the use and disuse theory but teleology. On the evolutional point of view, they came to an agreement, but Darwin could not accept the way of teleological explanation. For Darwin, a acquired character is not inherited. Many scholars, however, still regard the theory of evolution as a teleology. It begins with the categorical fallacy of teleology confusing short term and long term. They interpretate my goal of life as species' purpose. Prof. Choe, Jae Chun, tries to unify all fields of study by a biology under the word of 'Consilience' promoted by Wilson. But many scholars are against Choe because they think the concept of consilience is too much hegemonical. Definitely, sociobiology is not social Darwinism, but its teleological approach of evolution leads us to a logic of power. We give a value judgement for 'survival of the fittest' even though an human history is a very short part of evolution. There is no valuation in the history of nature but 'selection of nature'. Nature selected the things without love as Laotzu told, not by the reason why they were worthless. We, human beings, just survive, and our freedom is always against necessity of nature. The stage of evolution belongs not to a human world but to time in itself. Is science neutral? It seems to be a myth. Darwin owed Spencer, Smith, and Malthus for his conceptions. Science reflects a period. The society of biology is bisected by different interpretations on the theory of evolution just like Wilson and Dawkins versus Gould and Rewontin. Contemporary biology still can not explain culture, epigenesis (rules), and plasticity perfectly. The mainstream of western philosophers including Darwin believed that human original nature is evil. He depended on notions of struggle, selfishness, and perish. Social Darwinism was practically utilized by Nazi and Japanese imperialists. Korea was plundered by them. The theory of evolution challenged a western way of substantial thinking, and advocated that any species were not going toward perfection in all organic beings. There is no superiority or inferiority in Darwinism. There are no social rankism and optimization in natural selection. The grammar of evolution is a progressive tense. The problem is not Darwinism but teleology. Society has its goal, but nature has not. When teleology is excluded in Darwinism, we meet a pure biology not containing a political sociology.
한국어
이 글은 ‘진화론은 목적론이 아니다’라는 명제를 증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다윈과 라마르크의 가장 큰 차이점은 용불용설이 아니라 목적론에 있었다. 진화라는 관념에 그 둘은 일치했지만 다윈은 라마르크의 목적론적 설명방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윈에게 획득형질은 유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많은 연구자들은 여전히 진화론을 목적론적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가까운 목적을 긴 목적으로 확대적용하는 ‘목적론의 적용오류’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내 삶의 목적을 내 종의 목적으로 해석한다. 최재천이 윌슨의 통섭이라는 말을 통해 기도하는 것은 생물학에 의한 모든 학문의 통합이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이 개념을 전체주의적이고 패권주의적이라고 생각해서, ‘통섭’(統攝)은 ‘통섭’(通涉)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윌신의 지지자만큼이나 윌슨의 반대자는 많다. 사회생물학이 사회진화론은 아니지만 사회생물학이 지니고 있는 목적론은 진화론을 강자의 논리로 이끌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진화의 아주 짧은 부분인데도, 진화라는 말을 빌려 적자생존의 이론에 가치판단을 내리고 있다. 멸종된 생물이 생존한 생물에 비해 열등하리라는 생각은 인간적인 판단에 지나지 않는다. 자연이 선택했을 뿐이지, 그것이 못났기 때문이 아니다. 노자가 말했듯이, 자연은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 인류는 그저 살아남았을 뿐이고, 인간의 자유는 자연의 필연과 마주하며, 진화의 무대는 세계가 아니라 시간이다. 과학이 중립적이라는 생각은 신화에 가깝다. 다윈의 개념들은 각기 스펜서, 스미스 그리고 맬더스에 빚지고 있다. 과학은 시대를 반영한다. 진화론을 놓고도 생물학계는 양분되고 있다. 윌슨과 도킨스의 반대편에는 굴드와 르원틴이 있다. 현대생물학은 여전히 문화와 후성유전 그리고 가소성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한다. 서양철학은 성악설을 그 주류로 삼는다. 다윈도 예외는 아니다. 그의 이론은 어쩔 수 없이 투쟁, 이기심 그리고 멸종이라는 관념에 기대고 있다. 비록 사회진화론이긴 하지만, 진화론을 가장 잘 이용했던 사람들은 나치와 일본제국주의자였다. 조선은 그렇게 수탈되었다. 진화론은 서구의 실체론적 사고에 도전하는 것이며 어떤 종도 목적을 갖고 완전태로 나가고 있지 않다고 주장하여 우열을 나누지 않는다. 자연선택에는 서열과 최적화가 없다. 진화론은 진행형이다. 진화론이 문제가 아니라 목적론이 문제다. 사회는 목적이 있어도 자연에는 목적이 없다. 진화론에서 목적론이 배제될 때 우리는 사회학이 아닌 생물학을 만나게 된다.

목차

요약문
 1. 문제의 출발
 2. 최재천의 영광
 3. 중립의 신화
 4. 진화 대 천연
 5. 새로운 사회생물학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목적론의 적용오류 사회진화론 과학적 중립 환원주의 제국주의 categorical fallacy of teleology social Darwinism scientific neutrality reductionism imperialism

저자

  • 정세근 [ Jeong, Se Geun | 충북대학교 철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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