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1년 명 등극조사의 ‘貪墨無比’에 관한 논란과 실상
The controversy and truth about ‘Greed out of comparison(貪墨無比)’ of Ming envoy(明使臣) in 1621 1621년 명 등극조사의 ‘탐묵무비’에 관한 논란과 실상
This paper is looking into a comment about Ming envoy, in 1621(the 13th year of King Gwanghae-gun光海君; 1st year of King Tianqi天啓), written by Joseon(朝鮮) officer. It is described that greed of the Ming envoy(明使臣), Liuhongxun(劉鴻訓) and Yangdaoyin(楊道寅), was out of comparison. These days some Chinese scholars argue that they weren't greedy, but this is different from the truth. In those days, northeast asia was in a chaotic state of affairs. Houjin(後金), which was struggling for supremacy of Manzhou(滿洲), dominated Liudong(遼東), and moved southward. Ming was making efforts against it. Joseon was observing the situation, placing top priority on national security. The Ming envoy to Joseon thought of nothing but taking silver and ginseng even if Liudong peninsula, the land route, they passed through, was dominated by Houjin. Joseon, which was trying to maintain friendly relations with Ming, made efforts to entertain them and make them return safely to China without any trouble. Ming envoy took the sea route to China with Joseon delegates, only to be wrecked in a storm in Lushunkou(旅順口; Tieshankou 鐵山口), and lost the goods, they took. After overcoming the desperate distress, Liuhongxun had emotional change a lot. When he met Joseon delegates, who came to see him, he revealed his true heart and had time for self-reflexion. However, Ming envoy also received some favorable evaluation as to exchange between two nations. Ming envoy accomplished their diplomatic purpose well, in their own way, and also finished their jouney by sea safely, which hadn't been operated for the past 200 yea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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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1621년(광해군 13; 천계 1)에 명 등극조사 劉鴻訓과 楊道寅이 조선 출사 때 행 한 행위가 ‘貪墨無比’, 즉 탐욕스럽기 비길 데 없다고 한 실록 사관의 사평이 정확하게 기술되 었는지를 살펴보는데 중점을 두었다. 여기에 대해 일부 중국학자가 유홍훈이 지난 조선 출사 때 탐욕 행실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을 펼치고 있지만, 이는 진상을 곡해한 것이다. 당시 동북아 지역은 극도의 혼란으로 치닫고 있었다. 후금은 만주 지역의 패자로 등장하여 요동을 차지했고, 명나라는 후금의 남하를 막기 위해 온갖 방법을 강구하고 있었다.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 놓인 조선은 관망 외교를 펼치며 국가 안보를 지키는데 노력을 펼치고 있었다. 명 등극조사는 한반도에 들어온 직후에 육로를 통해 들어온 요동반도가 후금의 손에 넘어갔 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탐욕을 자행하여 은과 인삼을 챙기는데 여념이 없었다. 당시 대명 관계를 좋게 유지해야 하는 조선의 입장에서는 명 등극조사를 접대하는데 많은 신경을 쏟았 고, 어쩌면 이들의 사욕을 채워주며 사단 없이 귀국시키려는 분위기였다. 명 등극조사가 조선 사절과 함께 해로로 귀환하다가 旅順口(鐵山口)에서 폭풍우로 대형 조난 사고를 당했고, 조선에서 챙겨간 물품들을 모두 잃어버렸다. 절체절명의 조난을 넘긴 유 홍훈은 많은 심적 변화를 일으켰다. 고향집을 찾아온 조선 사신과 만나는 자리에서 지난 출사 때 탐욕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솔직히 토로하며 자아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그렇지만 명 등극 조사가 소기 목적에 따라 대조선 외교업무를 충실히 소화했고, 또한 조선사신과 함께 이백 년 만에 다시 개설된 첫 번째 해로사행을 무사히 마쳤던 공적이 있다. 한마디로 긍정과 부정 평 가가 혼재되어있다.
목차
국문요약 1. 서론 2. 명 등극조사 출사배경과 조선의 대응입장 3. 명 등극조사 ‘貪墨無比’에 대한 실록 기록 4. ‘貪墨無比’ 기록을 반론한 선행 논점 5. 선행반론의 문제점과 ‘貪墨無比’ 실상 6. ‘貪墨無比’에 대한 유홍훈의 자아반성 7. 결론 참고문헌
키워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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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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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