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에서 北魏前期 皇室의 혼인정책을 駙馬(公主혼인)와 外戚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北魏前期 部落首領들이 여전히 권력을 행사하고 정치적․사회적 지배층을 형성한 상황에서 이들을 통합하기 위해 北魏皇帝들은 이들 중 유력 세력을 결혼을 매개로 포섭하였다. 그리고 北魏皇帝들은 유목민 집단 가운데 拓跋氏에 충성한 가문들을 대대로 駙馬로 삼아 그들의 충성을 재확인하고 결속력을 다졌다. 또 北魏前期 정복전쟁 과정 중에 통합한 胡漢세력을 체제내로 포섭하기 위해 萬氏․乙弗[乙]氏․紇奚[嵆]氏 등 투항한 집단의 수장과 대대로 通婚관계를 맺으며 이들을 皇室의 藩屛으로 삼으려 하였다. 이밖에도 北魏는 北魏에 항복하거나 정복된 각종 胡․漢의 유력세력을 駙馬로 삼아 이들을 지배층으로 편입시켰다. 심지어 北魏는 당시의 주변국인 柔然․北涼 등에도 公主를 시집보내는 결혼동맹을 추진했다. 이때 반드시 상대방 군주의 누이 등 딸을 취하여 후궁으로 삼았다. 결혼동맹을 유지하기 위해 서로 인질을 확보하려 했기 때문에 北魏와 주변국은 서로 여자를 교환하는 결혼형태를 취했을 것이다. 北魏는 外戚세력들을 견제하기 위해 다음 皇位계승자의 生母를 살해하는 子貴母死제도를 채택하여 外戚이 발호하는 현상은 적어도 北魏前期에 는 없었다. 外戚 대신 皇帝의 保母 保太后가 臨朝稱制했지만 保太后 가문의 발호는 없었고, 그 정치적 지위는 保太后 사후 쇠락하였다. 北魏는 子貴母死제도를 통해 外戚의 발호를 견제하였지만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상생, 혹은 공존의 대상으로 보았다. 즉 外戚들을 高官으로 임명했지만 권력을 주지 않는 형태로 우대하였고 外戚의 일원을 駙馬로 삼았다. 즉, 北魏皇室은 公主를 外戚인 姚氏․杜氏․馮氏와 결혼시켜 겹사돈婚을 맺었고, 특히 長樂馮氏는 3대에 걸쳐 公主의 駙馬와 北魏皇帝들의 皇后와 左昭儀를 배출하였다. 이는 外戚을 皇室의 지지세력으로 편입하려는 정략적인 통혼정책으로 볼 수 있다. 또 序紀時代에도 이러한 통혼형태가 빈출하고, 契丹의 外戚인 蕭氏가 대개 皇室인 耶律氏의 공주들과 결혼하는 예를 보면 “外戚=駙馬”, 즉 두 집단의 교차결혼은 유목민 고유의 풍습일 가능성도 있다. 물론 비슷한 시기 南朝시기에도 劉宋皇室과 王․徐․江氏의 복잡한 近親婚과 異輩婚처럼 近親婚, 즉 형식상 겹사돈婚과 항렬이 다른 친척끼리 결혼하는 異輩婚이 빈출하였다는 지적을 잊어서는 안된다. 즉 南朝와 北朝에서 겹사돈婚이 보이므로 北魏의 현상을 胡族的 현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반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南朝의 겹사돈婚은門閥과 家格이 맞는 家門끼리 결혼하는 배타적 通婚圈, 즉 門第婚의 성격이 강하다. 門第婚하에서 소수의 가문이 通婚하면서 겹사돈婚이 발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北魏에서는 孝文帝가 門閥위주의 定姓族과 혼인정책을 실시하기 전까지 胡族지배층 사이에서는 門第婚이 통용되지 않았다. 또 序紀時代에도 外戚, 혹은 駙馬가문과도 世婚과 겹사돈婚이 빈출하기 때문에 南朝 門第婚의 영향이라기보다 序紀時代 유목민의 婚俗이 北魏前期에도 여전히 유행된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北魏後期 皇室과 駙馬․外戚 사이에는 北魏前期처럼 世婚과 겹사돈婚이 행해졌다. 이는 序紀時代와 北魏前期에 지속된 胡族的 通婚이 여전히 北魏後期에도 지속되었음을 뜻한다. 이러한 외형상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北魏後期 皇室의 通婚정책은 外戚의 발호로 北魏前期에 보여준 外戚의 발호와 정치적 부상을 통제, 혹은 견제하면서 外戚을 우대하는 절묘한 견제와 균형의 원리를 상실하였다. 이는 子貴母死 관행이 깨지면서 生母가 어린 皇帝를 대신하여 수렴청정하는 관행이 되살아났고, 황제의 신임을 얻거나(高肇) 禁軍을 장악한(于忠) 외척들이 정치의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北魏後期 皇室과 駙馬․外戚과의 통혼형태는 여전히 胡族的성격을 지녔으나 외척에 대한 견제와 우대라는 정책은 계승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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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