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혼백과 귀신 및 사후세계는 밀접한 관련이 있다. 사람이 죽은 후에도 어떠한 형식으로든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믿음은 대부분의 종교신앙의 기본적인 전제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사후의 존재는 어떠한 형태일까? 商代 갑골문에서도 영혼이나 혼백을 의미하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러한 사실이 상대 혹은 상대 이전의 시대에는 영혼관념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순장을 행한 사실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만약 상대인들이 신하나 노예들의 사후존재를 믿지 않았다면 그들을 순장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한시대의 황실귀족ㆍ관료ㆍ부자와 일반평민들 대부분은 인간사후의 영혼불멸을 강하게 믿는 선진시대의 예제를 중요하게 여겨 死者에 대한 장례와 제사 등의 여러 가지 활동들에 대해 상당히 신중을 기했다. 때문에 한대에도 더욱 장엄하고 복잡한 예의제도와 풍속이 생기게 된다. 또한 한대의 영혼불멸관은 상당한 발전을 거듭하여 한대 전반에 걸쳐 음양오행학과 참위미신, 신선방술 등의 발전을 촉진시켰으며, 한대 말에는 신선방술의 기초 위에 마침내 도교가 성립되었다. 한대 영혼불멸관과 사후세계관의 심화는 바로 당시 후장풍속을 더욱 성행하게 한 토양과 기초가 된다. 한대는 중국역사상 후장이 가장 발달한 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장이 상당히 유행했던 시기이며, 이러한 한대의 후장풍속의 형성과 발전은 사후세계에 대한 상상의 구체화 즉 영혼불멸관에 대한 강한 믿음과 관계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한대인들의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력은 이전시대에 비해 매우 깊고 분명해 졌다고 할 수 있다. 한대 민간에서 유행한 풍속을 보면, 대부분의 한대인들은 ‘鬼神’을 맹신하였으며, 그들의 일상생활은 거의 귀신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할 정도로, 귀신의 지배를 벗어나기 힘들었다. 사람이 죽은 후 승천하든 혹은 지하의 사후세계로 가든 대부분의 한대인들은 이러한 사후존재를 자유의 귀신이라고 믿었다. 이와 같이 한대 민간의 풍속은 상당 부분이 ‘귀신’과 관계된 것이 많았으며, 이러한 한대의 귀신관이 한대인들의 생활을 좌우하였던 것이다. 때문에 신과 인간의 중개자로 ‘무당(巫)’이 등장하였으며, 이들은 인간과 귀신간의 다리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