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는 법가의 사상을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法治主義를 주장하였다. 法사상사적으로 볼 때 그의 법치주의사상은 孔ㆍ孟에 의한 덕치주의와 荀子에 의한 예치주의를 거쳐 그 다음에 나타난 법사상이다. 그는 儒家에 의한 德治나 禮治로서는 당시의 전국시대의 사회적 혼란을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보았으며, 오로지 강력한 법치에 의하여서만 그러한 혼란은 극복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실제로 그의 법치주의적 통치론은 秦나라의 지배원리로 받아들여져서 秦의 始皇으로 하여금 천하대란을 평정하고 천하통일을 이룩하게 하였던 것이다. 한비자는 전기법가사상을 집대성하여 法, 術, 勢를 유기적으로 결합하여 중앙집권국가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고 군주전제의 강화를 핵심으로 하는 법가적 통치체계를 수립하였다. 법가사상은 ‘法’ㆍ‘法治’에 기반한 정치사상과 구세관을 제시하였다. 춘추전국시대 성문법에 기반한 법치를 최초로 시행하였으며 ‘法’ㆍ‘法治’에 기본한 변법, 개혁을 통해 秦나라를 단기간 내에 군사강국으로 발전시키고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할 수 있는 통일의 원동력을 제공하였다. 그러나 법가사상은 한 무제 시대에 유학의 국학채택 이후 중국의 사상계와 지식인사회에서 2000여 년 이상 무시, 도외시되어 왔으며 우리나라에는 아예 소개되지도 않았다. ‘陽儒陰法’, ‘外儒內法’에서 알 수 있듯이 중국의 역대 왕조는 표면적으로 유학을 통치이념으로 내세웠으나 내면적으로는 ‘법’에 기본한 ‘법치’를 통치의 실질적 기반으로 하였으며 이 같은 상태는 2000여 년 이상 장구히 계속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법’을 기반으로 한 법가사상은 실제로 중국역사의 형성과정에서 유가사상, 도가사상에 못지않은 공헌을 수행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이 법가의 통치론은 그 자체로 볼 때 당시의 중국뿐만 아니라 후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즉 법가사상 발흥이전의 儒, 道 등 관념주의적 사상이 지녔던 결점을 보완하였을 뿐만 아니라, 治國과 平天下에 이르는 실천적 방안의 구체화에 크게 공헌하였다. 법가사상의 생명이 비록 단기간에 끝났다고 할지라도 사상적 측면에서 법가가 후대에 끼친 영향과 오늘에 주는 교훈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한비자의 법가적 통치론은 제자백가 가운데 가장 실사구시에 충실했다고 할 수 있으며, 특히 정치와 관련지어 볼 때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역사와 역사교육의 학술적 연구 뿐만 아니라 역사현장에서 적용을 목표로 하는 실천적인 면모도 중요하게 간주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지나간 과거의 단순한 축적만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인 조상의 살아 숨쉬는 삶 그 자체일 것입니다.
그들의 짧은 생각으로 고통과 아픔을 던져준 것은 없었는지, 모든 것을 수용하여 보다 나은 공동체, 열리고 참된 오늘의 삶에서 다가오는 미래의 새롬찬 세계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를 바로 이해하고 나아가 실천해야 활짝 열린 미래가 올 것입니다.
당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점검하고 후세대를 교육시켜 참된 역사를 알리고 실천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올바른 역사를 연구하고 역사교육을 실천하기 위해 함께 하여 나아가야 하겠습니다.
역사교육의 기본 텍스트인 역사교과서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부속 학회인 역사와 교육학회에서 학술 발제와 점검을 통해 진정한 역사와 역사교육이 연구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앞장을 설 것입니다.
활기차고 열린 미래의 세계를 위해 우리 모두 올곧은 역사교과서로 진정한 역사교육이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뜻과 힘을 모아주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