栗谷李珥(1536~1584와 重峯趙憲(1544~1592)은 16세기 조선의 道學者이다. 道學의 실현방향은 行道와 垂敎라고 할 수 있다. 行道論은 經世論이라고 할 수 있는데, 도학파의 경세론은 本末論과 體用論 의 관점에서 살펴야 한다. 경세의 體가 되면서 本이 되는 것은 ‘修己’이며, ‘用’이자 ‘末’인 부분은 ‘安民’이다. 수신은 특히 당시 정치의 중심이던 임금에 게 최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었으며 안민은 백성들의 폐해를 제거하는 구 체적인 개혁방안 속에 나타난다. 율곡과 중봉은 도학파 경세론의 본말론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를 전형 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글이 율곡의『萬言封事』이며 그와 궤를 같이 하는 글 이 중봉의『東還封事』이다. 『萬言封事』는 먼저 정치의 실효를 거두지 못하는 일곱 가지 폐단을 제시하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대책을 ‘수기’와 ‘안민’으로 나누어서 개진한다. 수기적 대책을 4가지로, 안민적 대책을 5가지로 제시한 다. 『東還封事』는 擬上十六條疏, 質正官回還後先上八條疏로 구성되어 있 다. 十六條疏는 근본에 관한 것에 대해 올린 것이며, 팔조소 는 사무에 간 절할 것에 대해 올린 글이다. 십육조소 는 ‘格君論’에 기반하여 임금의 ‘수기’로부터 ‘안민’에 이르는 대책을 말하는 것이며, 팔조소 는 ‘사습(士習)’과 ‘(民風)’에 관계된 개선책을 올린 것이다. 중봉은 이 두 상소문을 통해 사회개 혁론을 ‘근본’과 ‘실효’의 방향으로 펴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봉의 개혁론은 율곡의 개혁론과 비슷하거나 율곡의 주장을 부연하거나 구체화 시킨 것이라고 본다. 율곡은 ‘실(實)’과 ‘시의(時宜)’에 중 점을 두면서 개혁론을 개진한 반면 중봉은 중국을 모범적인 사례로 제시하면 서 개혁론을 제시한다. 여기에서는 율곡과 중봉이 1574년 같은 해에 썼던 『萬言封事』와 「東還封事」를 통해 두 개혁론을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