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원진과 전우는 각각 외적의 침략에 의해 조선이 유린당하거나 멸망하는 시기에 살았던 인물이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 직면하여 둘 모두 지식인이면 마땅히 표출하여야만 하는 우환의식을 충분히 표현하였다. 인성과 물성에 대 한 논쟁도 어떻게 하면 인간과 국가의 존엄성을 되살릴 수 있는가라는 실천 적 맥락에서 진행되었다.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였는데 한원진과 전우는 왜 인·물성동론과 인·물성이론이라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을까? 한원진은 동물과는 구별되는 인간의 존엄성을 드높임으로써 위기를 타개 하려고 하였다. 그는 평생 유가의 정통성을 지키기 위하여 인간과 금수의 구 분, 유교와 불교의 구분 및 중화와 이적의 분별에 주력하였는데 핵심은 역시 인간과 금수의 판별에 있었다. 나아가 명을 물리치고 중국을 지배하는 청나 라 또한 금수이며 이적으로 보았고, 이제 조선에서 의리의 꽃을 피워야 하고, 이를 바탕으로 청나라를 물리치고 성리학적 인간의 삶의 터전을 되살려야 한 다는 강렬한 사명감을 표출하였다. 한원진은 조선의 두 이적 가운데 왜를 징벌하는 것은 한 나라 의 사적 원수를 갚는 것에 비해 청을 정벌하는 것은 천하 의 대의라고 주창하며 송시열의 뜻을 이어 북벌을 부르짖었다. 이러한 강렬 한 대의명분을 지닌 한원진의 입장에서 볼 때, 인간의 본성과 사물의 본성이 같다는 주장은 결굴 중화와 이적이 같다는 말과 마찬가지라는 의미를 띠기 때문에 반대할 수 밖에 없었다. 전우가 인·물성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고 동론 을 주장할 당시 호학파의 가장 강력한 무기 또한 인성과 물성이 같다는 주장 은 인간과 금수 및 중화와 이적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귀결될 수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믿고 주장한다면 결국은 망국의 길 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점이었다. 이러한 비난에 대해 전우는 역사적 전거를 들며 인간의 삶을 사느냐 금수의 삶을 사느냐 하는 문제는 본성의 문제가 아 니라 실천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한원진 시대에 사적 원수였던 왜는 전우 시 대에 와서 복수의 대의명분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존화양이도 명·청과 조선 과의 관계가 아닌 조선과 왜구와의 관계로 정립되었다. 청과 조선의 관계는 문화의 문제로 귀결되었지만 대한제국과 일본과의 관계는 전우에게 실존적 문제로 다가왔다. 따라서 더욱 확고한 주체성의 정립이 절실하였는데, 전우 는 본성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전제되어야만 주체성을 정립하고 실천적 동력 을 확보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서 성의 존귀성을 내세웠고, 인·물성 동이 논변을 통하여 이론적 근거를 확보하려 하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