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e Mahāyāna-Buddhism, it is taught that there are various pāramitās. There are ten pāramitās listed, but for our purposes, we are going to understand the praṇidhāna-pāramitā. In general the ten pāramitās may be divided into two groups, one of which is belonging to the prajñā-pāramitā, and the other to jñāna-pāramitā. The first group includes the six pāramitās and they are dāna(alma-giving), śīla(morality), kṣānti(forbearance), vīrya(exertion), dhyāna(meditation) and prajñā-pāramitā(perfection of wisdom). The prajñā-pāramitā suttas are preaching of these pāramitās. The second group includes another four pāramitās which are upāya(approach), praṇidhāna, bala(power) and jñāna-pāramitā(perfection of ultimate knowledge). we will focus on the praṇidhāna of these pāramitās. In the Early Buddhism, it is taught that there are ten pāramitās, too. But there is no praṇidhāna-pāramitā at these Early Buddhist pāramitās. Instead, we think that the adhiṭṭhāna-pāramitā is in place of the praṇidhāna of the Mahāyāna-Buddhism. This pāramitā is appeared several times at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the Buddhavaṃsa and the Cariyāpiṭaka[Khuddaka-nikāya vol 7.]. We also find other aspects of the praṇidhāna at the Early Buddhist scriptures, and one of the more important ones is the ariya-pariyesana of the Pāsarāsi Sutta[Majjhima-nikāya 26th sutta]. We do not have time now to discuss all the various levels of the meaning of the ariya-pariyesana, but suffice it to say that the most basic significance of the ariya-pariyesana is the avoidance of the unwholesome aims and the ardent longings of the sacred aims. The ariya-pariyesana is exemplified in the life of the Buddha by his own aims of leaving home and wandering about as a recluse. There are many other important elements in the meaning of the praṇidhāna. But if we can begin to see and understand the two elements of the adhiṭṭhāna-pāramitā and the ariya-pariyesana; if we can begin to appreciate the values and qualities that are exemplified in the life of Buddha, we will have gained greater insight into the real significance of the mind of praṇidhāna of the Early Buddh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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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은 가장 중요한 대승불교의 덕목 중 하나이다. 이미 대승의 주요 덕목을 열거해 놓은 열 가지 바라밀다 중 하나로 등장함을 보면 그 중량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모든 대승불교의 덕목은 사실 초기불교에서 그 배경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다고 봐야 하므로, 서원도 초기불교에 그 기원 또는 배경을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 입장에서 초기불교의 경설들을 살펴볼 때, 실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우선 첫째로 ‘서원’(paṇidhāna, praṇidhāna)이라는 말 자체는 이미 많은 연구가들이 주목하듯이 초기불교에서는 그다지 긍정적인 덕목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무원삼매(無願三昧) 무원해탈(無願解脫)로 이어지는 수행법과 그 결과에 주목해 볼 때 오히려 부정되어야 할 분위기마저 배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둘째로 ‘성구’(聖求, ariya-pariyesana)라는 표현이 초기불교에 출현하거니와, 이는 강렬한 서원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표현이다. 부처님이 출가 후 6년간 보살행을 전개해 나감에 있어서 근본 동기가 바로 ‘성구’라는 표현 속에 잘 드러나 있다. 성스런 것을 간절히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바로 ‘성구’이기 때문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에게도 역시 ‘성구’ 할 것을 당부하고 계신다. 그리고 셋째로 결의바라밀다(adhiṭṭāna-pāramitā)의 존재는 대승불교의 원바라밀다에 육박하는 무게로 다가온다. 결의 바라밀다의 결의에는 ‘의무(vata)’ 및 ‘서약(pratijñā)’의 뜻이 들어 있거니와, 성스런 것을 간절하게 구하면서[‘성구’] 아울러 반드시 이루어야할 ‘의무’처럼 그리고 반드시 지켜야 할 ‘서약’처럼 결의하라는 요청은 그대로 서원 의식으로 귀결된다. 즉 서원이라는 술어에 입각하여 고찰할 때 초기불교에 부정적 분위기가 느껴졌을 뿐이지, 서원 의식 또는 서원 정신은 오히려 강렬하고 활발하게 표출되는 것이 초기불교인 것이다. 그리하여 넷째로 부처님이 반열반에 즈음하여, 깨달은 직후의 사건 하나를 회고하는 대목이 있거니와, 거기서 남녀 재가출가의 모든 불자들이 똑같이 불법 수행에 전념하기를 목적으로 두시고 아울러 전법에 나아가기를 목적으로 하신다는 사실을 듣게 된다. 결국 불자들은 단순히 자신의 해탈 열반은 물론 이웃의 해탈 열반까지 서원해야 한다는 뜻이 성립하고 마니, 여기서 초기불교 서원 의식의 절정을 보게 된다.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