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work is intended to answer to the question, “justice can be incompatible with care as moral principles?” Carol Gilligan suggests in her Book(1982) that morality includes two moral orientation: the morality of justice as stressed by Freud, Piaget, and Kohlberg; an ethic of care and response which is more central to understanding female moral judgement and action than it is to the understanding of judgement and action in males. Gilligan has criticised that Kohlberg’s objective position was based on an inerrant neutrality which concealed power and falsified knowledge. Gilligan says that the standard justice reasoning dilemmas and issue scoring system will not reproduce the findings of invariant sequence and structured wholeness for female that Colby and Kohlberg have for males as reported in their longitudinal study. Kohlberg partially accept Gilligan’s differentiation of two orientations in moral judgement, he does not believe, that the growth of justice and the ethic of care represent two distinct tracks of moral stage (i.e., structural) development. At the postconventional stages there is typically an effort to integrate concerns of justice and care. The principle of persons as ends is common to both the ethic of care and the ethic of justice. Higgins reports the convergence of the justice and care orientations at Kohlbergian postconventional level. Related to a female kibbutz case Kohlberg sees that many moral situations or dilemmas do not pose a choice between one or the other orientation but, rather, call out a response which integrates both orientations. In her revised book she writes that she has not revised, but she says too that it has been astonishing for her to discover, in the time since this book was published, how her “experiences resonate with the experiences of other women and also in different ways with the experiences of men.” With this statement her intention against Kohlberg’s thesis is changed basically.
한국어
이 논문에서 “정의와 배려는 도덕원리로서 양립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길리건은 1982년의 저서에서 도덕성에는 두 가지 도덕 지향이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의 도덕성은 프로이트, 피아제, 콜버그에 의하여 강조되었으며, 배려와 반응의 윤리는 남성의 판단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보다는 여성의 도덕판단을 이해하는데 더 중심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길리건은 콜버그의 객관적인 입장이 권력과 거짓된 지식을 감추고 있는 잘못된 중립성에 토대를 두고 있다고 비판했다. 길리건은 표준 정의추론 딜레마와 표준 이슈 평정법으로는 콜비와 콜버그의 종단연구에서 남성에게 나타난다고 보고한 것과 같은 불변계열과 구조적 전체성이 여성들에 대한 관찰에서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콜버그는 도덕판단에서 두 지향의 분화에 대한 길리건의 주장에 부분적으로 동의했으나, 정의의 발달과 배려 윤리가 도덕단계의 (구조적) 발달의 두 트랙이라는 사실은 믿지 않았다. 콜버그의 후기인습 수준에서는 정의와 배려의 관심이 하나로 통합된다.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는 원리는 배려 윤리나 정의 윤리에 모두 공통적이다. 콜버그는 인습이후 수준에서 정의와 배려 지향의 통합 사실을 보고했다. 키부츠 여성 연구 사례와 관련하여 콜버그는 일반적으로 도덕상황이나 도덕 딜레마는 정의와 배려라는 두 지향들 중에서 어느 한쪽만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지향 모두를 통합하는 반응을 불러낸다고 보았다. 길리건은 1993년의 재판에서 초판의 내용을 전혀 개정하지 않았다고 썼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책이 출간된 이후 “내 경험이 다른 여성들의 경험, 또 좀 다른 방식으로 남성들의 경험과도 공명함을 알게” 되었다고 술회했다. 이 진술은 콜버그의 테제에 대한 그녀의 주장이 근본적으로 바뀐 사실을 반증한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