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ta Activa와 Vita contemplativa : 삶의 유형에 대한 개념사적 논의
Vita Activa and Vita Contemplativa: A Study on Patterns of Life from Perspective of the History of Its Concept
Academic discussion on ways of human life has quite a long history, as βίος θεωρητικóς and βίος πρακτικóς already had been used in the hellenic philosophical texts in B.C. 4-5 centuries. Platon and Aristotle were the first scholars who engaged in research on it with those concepts and other as βίος πολιτικός and θεωρία. The greek terminology had been translated into Latin as Vita activa and Vita contemplativa which have been used from Cicero and Seneca through medieval christian thinkers Augustine and Thomas Aquinas to Hannah Arendt at the present time. Vita activa indicates mostly the lifestyle by which politician or scholar participate in political realm directly or by which priest or pastor take social works as his main task. In contrast to it, Vita contemplativa points originally to the speculative life of philosopher in ancient greek context as well as to the ascetical life of anchoret in christian background. From the history of the concepts, we find that ancient greek philosophers as well as western and eastern church fathers mostly considered Vita contemplativa better than or superior to Vita activa on the one hand, some thinkers suggested vita mixta, a third lifestyle, as the best one, trying to combine both on the other hand. Meanwhile, Hannah Arendt stressed on Vita activa as a basic and necessary conditio humana; according to her, human life is basically a Vita activa which consists of work, labour, and action. We can propose various paradigms of human life, above all of professors or scholars and clergy, from traditional discussion on Vita activa and Vita contemplativa: vita voluptatis or vita cupiditatis, vita contempaltiva, Vita activa, Vita contemplativa containing action, Vita activa containing contemplation, vita mixta etc.
한국어
인간 삶의 방식 내지 유형에 대한 논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미 B.C. 4~5세기경 고대 희랍에서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에 의해 βίος θεωρητικóς 와 βίος πρακτικóς에 대한 논의들이 활발하게 일어나면서 이 주제에 대한 연구는 시작되었다. 이들은 이 개념 외에 그것들과 유사한 θεωρία와 βίος πολιτικός 등과 함께 인간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여 논의하였다. 이 두 용어는 후기 고대로 넘어오면서 로마문화권 속에서 라틴어 vita activa와 vita contemplativa로 번역되었고, 우선은 키케로나 세네카 등에 의해 로마의 지성인들의 삶에 대한 반성으로 심도있게 다루어지다가 이후 철학계를 넘어 아우구스티누스로부터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사상가들에게서 신앙적 삶의 방식을 두고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다. 그 후 르네상스와 근세의 논의를 거쳐 20세기 정치사상가 Hannah Arendt에 이르기까지 장구한 논의의 역사를 보여준다. 전통적으로 vita activa는 정치가들이나 정치에 참여하는 학자들의 삶과 사회적 봉사를 주요과제로 하는 수도자들이나 종교인들의 삶을 지칭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vita contemplativa는 진리탐구에 매진하는 학자들의 사변적 삶과 사막이나 수도원 등에서 은거하면서 금욕과 명상 등 수행적 삶을 사는 은수자 내지는 수도자의 삶을 의미했다. 이 개념논의의 초기부터 고대 희랍철학자들은 물론 동서방의 기독교사상가들까지 정치계에 강하게 연루되어 있던 키케로 같은 일부 학자들을 제외하고는 vita contemplativa를 vita activa보다 나은 삶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강했던지 아니면 아우구스티누스에게 보이듯이 이 두 가지 삶을 종합한 vita mixta를 이상적으로 삶으로 제시하였음을 볼 수 있다. 반면 현대에 이르러 이 주제에 대해 심도있게 연구한 한나 아렌트는 vita activa를 노동, 생산, 행위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면서 그것을 근본적이고도 필수적인 인간의 조건(conditio humana)라고 간주하였다. 이 두 가지 삶의 유형은 오늘날도 인간의 삶에 적용되는데, 특히 교수들과 같은 학자들의 삶과 종교인들의 삶에 적용된다. 우선 종교인들의 경우 중세처럼 여전히 은둔이나 도피가운데 명상과 기도에 주력하는 수행자들이나 좁은 의미에서의 종교의 영역을 벗어나지 않고 자기 사역에 충실하는 종교인들은 vita contemplativa에, 반면 봉사와 구제같은 사회사업에 주력하는 이들을 vita activa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학문의 전당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대학의 교수들이나 학자들에게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전개된다. 오로지 상아탑에서 진리탐구나 학문연구에 중점을 두는 vita contemplativa 형의 학인들이 있는 반면에, 제도권정치나 행정기관에 참여하거나 아니면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교수들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도 대학교수나 학자들의 과제와 사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견해차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전자는 진리탐구자체가 사명이고, 후자는 진리의 실천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개념으로부터 우리는 인간 삶의 다양한 패러다임을 도출해 낼 수 있다: vita voluptatis 또는 vita cupiditatis(욕망중심의 삶 내지 쾌락주의적 삶)의 유형, vita contemplativa(순수한 학문연구의 삶과 종교적 수행의 삶)의 유형, vita activa(사회실천적 또는 정치지향적 삶)의 유형, vita mixta(이론과 실천, 관조와 참여가 조화를 이룬 삶)의 유형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유형은 양쪽 각기의 비중에 따라 관상중심적, 활동중심적, 그리고 균형적인 형태가 있을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개념적 논의 3. Vita Activa와 Vita contemplativa의 사적 고찰 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나. 후기고대에서의 논의 다. 교부시대 및 중세 스콜라사상에서의 논의 라. 근세와 현대에서의 논의들 4. Vita Activa와 Vita contemplativa에서 나타나는 삶의 패러다임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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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