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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 셸링 그리고 실재성으로서의 악
Der Begriff des Bösen bei Kant und Schel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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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56집 (2011.09)바로가기
  • 페이지
    pp.1-26
  • 저자
    박영선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67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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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Die Frage nach dem Bösen war im Mittelalter das Hauptproblem, das in Bezug auf die Theodizee in der Philosophie und Theologie heftig diskutiert worden ist. Augustinus und Thomas von Aquinas waren Vertreter der Theodizee. Aber nach der neuzeitlichen Philosophie wurde erst die Posivität des Bösen ins Auge gefasst und das Böse ist als die existierende Realität anerkannt. Das Böese ist also nicht Mangel des Guten, sondern vielmehr bloß die scheinbare Abwesenheit des Guten. Die Umkehrung der klassischen Deutung des Bösen wurde am Ende der neuzeitlichen Philosophiegeschichte von Schopenhauer vorgenommen. In der schlechtesten aller möglichen Welten ist das Gute nichts anders als eine Absenz des Bösen. Aber davor gab es am frühesten Phase die Philosophen, die behauptet, es gebe in Wahrheit kein Böses und die Rede von Böse beruhe auf einer irrigen Betrachtungsweise der Dinge. Die Vertreter dieser Ansicht, die die Negationstheorie genannt ist, sind Leibniz und Spinoza. Nun aber wurde das Böse von Kant und Schelling als eine eigene Realität verstanden. Im Gegensatz zu Leibniz versteht Kant das Böse nicht als Negation, sondern als eine dem Guten entgegengesetzen Realität des Willens. Die Bedeutung des Bösen Kants wurde von Schelling noch aktualliziert aufgenommen und radikalisiert. Das Böse beruht nach Schelling auf einer sich durch den Freiheitsmissbruch des Menschen ereigneten Umkehrung der Prinzipien.
한국어
악에 대한 물음은 신(존재)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변신론의 형태를 띠며 중세기에 중점적으로 논의되었다. 그러나 근대철학 이후에는 오히려 악의 적극성이 부각되면서 악은 현실적으로 실재하는 것으로 간주되며, 이러한 관점은 쇼펜하우어 철학에서 정점을 이룬다. 본 논문의 목적은 바로 악을 실재하는 현실로 간주하게 되는 도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주지하듯이 아우구스티누스, 아퀴나스, 라이프니츠에서 악은 어떤 적극성을 띤 것이 아니라 존재의 결핍이다. 악의 존재는 논리적으로 하등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스피노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악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사물이 가져야할 규정을 결하고 있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사물에 대한 우리의 부적절한 고찰방식이 그렇게 표상한다는 것이다. 종래의 전통적인 악의 설명방식 대신에 칸트와 셸링은 악의 적극적 현존에서 출발한다. 칸트가 보기에 라이프니츠는 단지 무모순적 사고 가능성으로부터 존재의 원리를 이끌어 내는 오류를 범하였다. 칸트는 왼손과 오른손이 개념적으로 동일하다고하더라도 이것들을 실질적으로 동일하다고 볼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악을 선의 결핍으로 간주하여(라이프니츠) 악을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단순히 논리적으로 제거할 수 없다. 칸트에서 악은 선에 실질적으로 대립하는, 도덕법칙 위에 자기애를 두는 것에서 결과한다. 셸링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의 가능성을 존재론적 차원에 정위시킨다. 즉 악이 인간에서 발생하는 것은 선과 악의 존재론적 근원형상인 빛과 어둠이 비로소 인간에서 분리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빛과 어둠의 분리 가능성은 이미 신에 의해서 인간에게 부여되었다고 본다. 즉 인간도 자연물과 마찬가지로 어두운 원리를 태생적으로 지니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인간에서 악은 불가피하다. 선과 악은 실체적인 대립개념이 아니라 변증법적 대립개념이다. 칸트 및 셸링에 의한 악의 적극적 개념은 쇼펜하우어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한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세부적으로 라이프니츠 철학의 역전이며 동시에 칸트 및 셸링의 악의 개념의 극단화이다. 이 세계는 가능한 한 최선의 세계가 아니라 최악의 세계이다. 악은 선의 결핍이 아니라, 오히려 선은 악의 부재일 뿐이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는 말
 2. 비실재로서의 악
  2.1. 라이프니츠 ― 고전 결핍이론의 극단으로서의 악
  2.2. 스피노자와 동일성철학에서의 셸링
 3. 선의 대립으로서의 악
  3.1. 칸트의 라이프니츠 비판과 악의 개념
  3.2. 셸링 ― 존재질서의 전도로서의 적극적인 악
 4. 나오는 말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키워드

존재 자기애 고유의지 보편의지 개별의지 das Gute das Böse Negationstheorie Eigenwille Universallwille.

저자

  • 박영선 [ Park, Young-Sun | 중앙대학교 교양학부대학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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