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Korean Catholic Church has promoted the beatification of Fr. Thomas Choe Yang-eop since 1990’s. Symposiums have been held and researchers have presented their foundings so far about his life in different views. There are still disagreements on several issues of Fr. Choe’s life among historians of Chuch. The most controversial ones are these three: 1) his route of pastoral visits and pastoral center 2) how much he was involved in the establishment of the first seminary in Korea 3) where he wrote his pastoral letters, and where he died and was buried at first. This article discusses three issues primarily based on the chronology of Fr. Choe and with limited sources which are the letters of his, his contemporary missionaries’, and testimonies of the first generation descendants. We have examined two different theories on Fr. Choe’s deathplace. Orally transmitted testimonies of descendants were used as primary source rather than pastoral letters because there are no clear descriptions on that matter in the letters. After analyzing the sources, we have concluded that Fr. Choe did not die in Jinchun or Baeti after getting sick in Moon-gyoung and traveling for 15 or 16 days from there. Fr. Choe must have gotten a decease at an inn in Moon-gyoung and have passed away while being treated at Yi’s pharmacy there. The other two issues have been examined with limited sources of Fr. Choe’s letters and European missionaries. It is our conclusion that Fr. Choe didn’t stay at one Catholic villiage for a long period and teach seminarists, or have a residence in a village, to make plans for ministration, and preach Christians. Fr. Choe’s life was on the road; he took care of Christians and seminarists not at Catholic villages but at places where Christians and non-Christians were living together, worte his letters on the road, faced persecution on the road, and at last got a decease on the road, received his last sacrament and passed away right there.
한국어
한국천주교회는 최양업 토마스 신부를 ‘신앙의 증거자’로서 교황청에 시복시성 청원을 하고, 다양한 연구 작업과 심포지엄을 통하여 여러 각도에서 조명을 시도하였다. 하지만 교회사학자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최양업 신부의 생애를 둘러싸고 풀리지 않는 다양한 쟁점들이 존재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첨예하게 쟁점화 되고 있는 부분은 첫째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순방 경로와 사목중심지 문제이고, 둘째는 최초 신학교 설립과 최 신부의 관련성 문제이며, 셋째는 사목서한의 작성 장소 및 선종 장소와 가매장지 문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최양업 신부의 연보(年譜)에 기반하면서 최 신부의 서한들과 동시대 선교사들의 편지, 그리고 제1세대 후손들의 증언들에만 의거했다. 최양업 신부의 선종에 관한 문제는 명확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지 않은 사목서한보다는 후손들이 전하는 구전전승을 1차 사료로 받아들여, ‘문경 선종설’과 ‘진천 선종설’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최 신부가 문경에서 병을 얻어 15,6일간 진천이나 배티로 가서 선종하였다는 일부 학자들의 주장은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최 신부는 문경 어느 주막집에서 병을 얻었고, 그곳에서 문경 읍내에 있는 평창이씨 약국에서 치료를 받다가 선종하였다고 밖에 달리 설명되지 않는다. 사목중심지와 신학교, 그리고 사목행로와 서한작성 장소 문제는 최양업 신부의 사목서한들과 당시 서양 선교사들의 사목서한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의 서한내용에 따르면, 그는 어떤 교우촌에서 장기간 머물러서 신학생들과 함께 한다든지 혹은 교우촌 안에 자신의 사제관을 짓고 거기에서 사목활동계획을 세우거나 신자들을 만나지도 않았다고 본다. 최 신부는 교우들로만 이루어진 ‘순수 교우촌’이 아니라 교우들과 외교인들이 공존하고 있는 지대와 길 위에서 신자들이나 신학생들을 만났고, 길 위에서 서한들을 작성하였으며, 길 위에서 박해와 마주하였고, 마침내 길 위에서 병을 얻어 몸져누웠으며, 몸져누운 바로 그곳에서 마지막 성사를 받았고, 거기에서 선종하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Ⅰ. 들어가는 말 Ⅱ. 연보(年譜) Ⅲ. 예민한 교회사적 쟁점 몇 가지 Ⅵ. 쟁점들에 대한 논변(論辯) Ⅴ. 오해와 사실(事實) 사이에서 바뀔 수 없는 사실(史實) Ⅵ. 나오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최양업 신부조선신학교최양업 신부의 선종지최양업 신부의 사목행로최양업 신부의 서한작성 장소교우촌Fr. Choe Yang-eopseminary in KoreaFr. Choe’s deathplaceFr. Choe’s route of pastoral visitsplaces where Fr. Choe wrote his pastoral lettersCatholic community
수원교회사연구소 [Suwon Research Institute of Catholic History Ha-nam, Korea]
설립연도
2003
분야
인문학>기독교신학
소개
◎ 설립취지
"수원교회사연구소"는 천주교 수원교구 설정 40주년을 맞이하여 수원교구와 한국교회의 역사를 연구하고, 신앙 선조들의 삶과 순교영성을 발굴하여, 이를 널리 알리고 후대에 전함으로써 한국 가톨릭 교회의 신앙과 문화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해 2003년 1월 1일 교구장 최덕기 바오로 주교님이 설립하셨습니다.
◎ 연구소 현황
초대 연구소장은 구산성지 주임신부인 정종득 바오로 신부가 맡게 되었으며,
연구소의 위치는 구산성지 내에 있습니다. 원활한 연구소 운영을 위해 2006년 2월 현재 7명의 연구위원과 6명의 운영위원으로 구성되어 소장의 업무를 보좌하고 있으며, 3명의 연구원이 교회사연구의 실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 향후 연구소의 운영방침
교구 내 순교성지 및 순교자의 생애, 각 성지의 신앙적 유산을 발굴하고 이를 정리하며, 아직 개발되지 않은 교회사적지 및 순교자를 발굴하여 순교영성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울러 신임 연구원들과 동호회원을 대상으로 매월 둘째주 토요일 한국천주교회사 월례 강좌를 실시한 후 신앙적 나눔을 가지고, 년 1~2회 학술심포지엄과 성지순례, 특별강연 등을 실시하여 순교신심을 고취하고자 합니다. 앞으로 교구 내 각 본당이나 공소, 성지의 역사를 편찬하도록 연구소에 위탁하여 오는 작업도 수행할 것입니다.
간행물
간행물명
교회사학 [Research Journal of Catholic Church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