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고는 漢나라 말기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書가 ‘藝’化되어 가는지에 대해서 살펴보고, 그처럼 서예가 예술화되어 가는 과정에서 草書가 어떤 역할과 작용을 하는지에 대해서 고찰하였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書를 하나의 예술 행위로 보기 시작한 시각은 漢나라 말기 蔡邕이 「筆論」에서 한 ‘書, 散也’라는 말에서 찾아야 한다는 데에 동의해 왔고 蔡邕을 중국 서예사에서 書의 ‘藝’化를 최초로 주창한 인물로 보아 왔다. 이점에 대해서 면밀히 검토한 결과, 채옹이전에 이미 이러한 시각이 충분히 형성되었고 채옹은 다만 사회에 이미 형성된 그러한 시각들을 귀납적으로 정리하여 ‘書, 散也’라는 정의를 제시한 것일 뿐임을 확인하였다. ‘書’의 ‘藝’化 현상은 채옹 이전에 이미 나타났으며, 그 ‘藝’를 설명하기 위해서 쓴 최초의 문장 역시 채옹의 「筆論」이 아니라, 崔瑗의 「草書勢」라고 해야 옳다. 崔瑗이 「草書勢」에서 제시한 比擬의 서론은 서예가 단순히 서예에 머물지 않고 무용과 깊은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서예가 자연물에 대한 擬形性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생물체와 같은 身體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인데 이처럼 擬形性과 身體性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서예는 회화보다도 오히려 무용과 근사한 예술이다. 이처럼, 서예와 무용성의 상관성을 제시함으로써 최원의 「草書勢」는 ‘書’의 ‘藝’化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漢나라 말기에는 초서를 주로 쓰는 서예가들이 유파를 형성하여 초서 유행을 주도함으로써 書는 더욱 더 ‘藝’化의 길을 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