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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지장신앙의 연원(淵源)과 김지장(金地藏)
A Study on the Chinese belief in Ksitigarbha started and Gim Jij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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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한국정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정토학연구 KCI 등재후보 바로가기
  • 통권
    제15권 (2011.06)바로가기
  • 페이지
    pp.77-103
  • 저자
    김진무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55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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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t was relatively late and not until the Tang period that the Chinese belief in Ksitigarbha started. The difference of Chinese Ksitigarbha worship from that of other bodhisattvas was it was caused by a real person; more significantly to us, the arising of such a belief was occasioned by the educating activities of Gim Jijang (金地藏, 696-794), a prince of the Silla dynasty, at Mt. Jiuhua. Thus, this article briefly examined how the belief in Ksitigarbha manifested itself in China while focusing on Gim. Reference materials on Gim are chiefly Jiuhua shan huasheng si ji 󰡔九華山化城寺記󰡕, Song gaoseng zhuan 󰡔宋高僧传󰡕, Shenseng zhuan 󰡔神僧傳󰡕, and various kinds of Jiuhua shan zhi 󰡔九華山志󰡕. Among them, Jiuhua shan huasheng si ji by Fei Guanqing 费冠卿 is the most trustworthy as it was the first to appear. Accordingly this paper attempted to analyze it thoroughly and then inferred the following four clear facts. First, Gim was born of a royal family coming from Silla and disciplined himself alone on Mt. Jiuhua. Second, on account of his practice lots of donators and Buddhist monks assembled and as a result Huacheng Temple 化城寺 came to be built. With the gradual increase in his transformational activities he became known to his home (Silla), which led numerous Silla Buddhist monks to come across the border to the temple making a large congregation. Third, according to the record of his emphasis on rigorous sitting in meditation and physical labor Gim was presumably influenced by the Ksitigarbha Sutra and the 'Three Stages Teaching' 三階敎. Fourth, there appeared various miracles after his death and then he was enshrined as the incarnation of a saint. These gradually contributed to the formation of Mt. Jiuhua as the practice site of Ksitigarbha. The reason for the personification of Gim as Ksitigarbha was that a variety of thaumaturgy after his death significantly coincided with the description in the sutra. After passing through the chaotic periods of the later Tang and the Five Dynasties, gradual additions of legends had made an everlasting impression on many people and by the Ming era Gim Jijang was finally recognized as the incarnation of Ksitigarbha by the imperial order while Mt. Jiuhua became the official sanctuary of Bodhisattva Ksitigarbha.
한국어
중국에서 지장신앙이 일어나게 된 것은 비교적 늦은 당대(唐代)에 이르러서였다. 특히 지장신앙이 다른 보살신앙과 다른 점은 바로 실존인물에 의하여 출현했다는 것이고, 우리에게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은 지장신앙이 본격적으로 중국에서 일어나게 된 계기가 바로 구화산에서 신라 왕자 출신인 김지장(金地藏, 696-794)의 행화(行化)라고 하겠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김지장을 중심으로 지장신앙이 어떻게 발현되었는가에 대하여 간략하게 고찰하였다. 김지장과 관련된 자료는 󰡔구화산화성사기(九華山化城寺記)󰡕, 󰡔송고승전(宋高僧传)󰡕, 󰡔신승전(神僧傳)󰡕 및 여러 종의 󰡔구화산지(九華山志)󰡕등이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자료 가운데 당대(唐代) 비관경(费冠卿)이 찬술한 󰡔구화산화성사기󰡕는 년대가 가장 빠른 까닭으로 믿을 만하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이를 전적으로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네 가지의 분명한 사실을 유추하였다. 첫째, 김지장이 왕족출신이고 신라로부터 도래했으며, 구화산에서 홀로 수행하였다는 사실이다. 둘째, 이러한 김지장의 수행으로부터 구화산 주변에 많은 단월(檀越)들이 형성되었고, 또한 승중(僧衆)들이 모여들었고, 그에 따라 사찰을 건축하여 ‘화성사(化城寺)’가 출현했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점차 교화가 널리 퍼지게 되자 드디어 ‘본국(신라)’에까지 알려지게 되어 수많은 승려들이 도래하여 무리를 이루게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김지장은 철저하게 ‘좌선’ 수행을 중시했고 노동을 했다는 기사(記事)로부터 지장경전과 삼계교(三階敎)의 영향을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넷째, 김지장의 입적 후에 다양한 신이(神異)가 나타나 성인(聖人)의 화신으로 모셔졌으며, 점차 구화산(九華山)이 지장보살도량(地藏菩薩道場)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김지장이 지장보살의 화신으로 받들어지게 된 것에는 김지장의 법명으로부터 행화(行化) 및 입적 후 여러 가지 신이(神異)가 경전에서 표현되는 바와 상당히 일치하기 때문이었다. 김지장의 입적 이후 당말(唐末)․오대(五代)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점차로 전설이 추가되어 많은 이들에게 무한한 감화를 주었다가 명대(明代)에 이르러 황명(皇命)에 의해 김지장은 지장보살의 화신(化身)으로 인정되었으며, 구화산(九華山) 역시 공식적인 지장보살성지(地藏菩薩聖地)가 되었던 것이다.

목차

한글요약
 I. 서언(緖言)
 ll. 김지장(金地藏)과 구화산 지장도량의 형성
 III. 구화산(九華山) 지장도량의 전개
 IV. 결어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김지장 김교각 구화산 비관경 구화산 화성사기 지장보살도량 Gim Jijang Gim Gyogak Mt. Jiuhua Fei Guanqing Jiuhua shan huasheng si ji practice site of Ksitigarbha Bodhisattva 金地藏 金喬覺 九華山 费冠卿 九華山化城寺記

저자

  • 김진무 [ Kim. Jin-Moo | 동국대 불교문화연구원 부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한국정토학회 [The Korean Society of Pure Land Buddhism]
  • 설립연도
    1988
  • 분야
    인문학>불교학
  • 소개
    고타마 싯다르타가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던 것은 현세에 살아가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의 인식이 그의 깨달음이었으며,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그의 가르침이요 실천행이었다고 우리는 믿는다. 따라서 불교인에게 있어서의 궁극 목표인 열반은 탈(脫)사회의 경지가 아니며, 자주(自主), 자율(自律), 자유(自由)의 인격을 사회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아울러 개인적 완성인 열반을 사회화하려는 노력이 부처님의 실천행이었고, 그 결실이 승가 사회였다. 이러한 우리의 인식은 이미 역사상 정토(淨土)사상으로 구체화되었다. 그러나 이는 그 행태에 있어서 기복적 신앙으로 치우침으로써 그 본의가 침체된 면이 없지 않다. 이에 우리는 자주, 자율, 자유라는 인류의 이상적 인격을 완성해 가듯이 자유, 평등의 사회를 구현해 가는 것이 정토를 이루는 길임을 재인식하고, 이를 뒷받침할 객관적 연구와 능동적 실천을 위해 "한국정토학회"를 결성하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 개개인의 불교적 인격완성이 저절로 정토를 이루게 할 것이라는 안이함을 경계하며, 부처님의 이타적 노력을 교훈 삼아, 사회의 제반 문제를 불교적 입지에서 해결하는데 일익을 도모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따라서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윤리, 예술, 사회 등의 제반 분야도 당연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된다. 결국 우리의 취지는 불교 교학의 이론적 토대 위에서 정토 실현의 현실적 실천방도를 모색하자는 것이며, 당시대에 요구되는 불교의 실천성을 회복함으로써 불교가 정신적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할 대안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모든 학문의 활동을 정토에로 승화시켜서 인류 이상(理想)의 구현에 이바지 하고자 함이니, 이것이 우리의 염원이다.

간행물

  • 간행물명
    정토학연구 [Journal of the Pure Land Buddhism]
  • 간기
    반년간
  • pISSN
    1229-1846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220 DDC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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