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paper observed Sin Ko Song's Controversy of Art-Popularization and Popular Forms of Art. The result of analysis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1) From 1928 to 1932, He was broadening the scope of critical object. That is a chronicle choices from Children's Song to Children's Poem, from Children's Poem to Poetry, from Poetry to Music, fro Music to Theater. 2) From 1928 to 1931, His Criticism adjusted the focus of Children's Song. He judged the Bourgeoisie Viewpoint of Children by angelism and then exposed revolutionary Romanticism. 3) From 1928 to 1931, His Criticism adjusted the focus of Children's Poem. He separated Children's Poem from Children's Song and then claimed The Proletarian Children's Poem, Bolshevikization of Children's Poem. 4) During 1931, His Criticism adjusted the focus of contemporary poetry. He judged the poetry for art principle by the hedonic subjectivism and then produced The Proletarian Realism. 5) From 1930 to 1931, His Criticism adjusted the focus of contemporary music. he produced Art-Popularization, and then advocated Art-Popularization through Music, Music-Popularization. 6) From 1931 to 1932, His Criticism adjusted the focus of contemporary Theatre. He insisted on Theatre-Popularization. That is the useless theory of indoor performing, the theory of Drama League, the theory of an itinerant troupe, The theory of Sprech-chor.
한국어
신고송은 1928년에서 1932년 사이 비평 대상을 동요에서 동시로, 시로, 음악으로, 연극으 로 연대기적으로 선택하면서 확장하고 관련 논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는 1928년에서 1931년까지 동요와 동시를 대상으로 하여 장르분리논쟁을 주도한다. 그는 동요를 동심천사주의, 부르주아적 아동관으로 비판하면서 동시와의 분리론을 내세운다. 분리론의 초점은 동요를 부르주아적 아동관으로 제한하는 형식을 제거하여 볼셰비키화 하는 것, 프롤레타리아 동시에 있다. 볼셰비키화를 준거로 하여 그는 1931년 동시대 시에 대한 실제비평을 한다. 그는 동시대 시의 유파들 가운데 계급예술시를 ‘부르주아, 초현실적 의식, 리리시즘, 초현실적 주관’ 등으로 볼셰비키화를 이루어 내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식, 리얼리스틱, 구체적 사실적 사실’을 근거로 볼셰비키화 하는 방법론으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을 제시한다.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을 방법론으로 하여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정치적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그는 1930년에서 1931년까지 음악 장르의 속성, 대중과의 접근성을 그 수단으로 제시 한다. 대중과의 접근성을 도구로 하여 프롤레타리아 예술은 음악이 가지고 있는 대중과의 접근성을 결합시켜서 그 정치적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 것이다.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정치적 임무를 담아내고 수행할 예술적 실천 형식을 그는 1931년에 서 1932년까지 연극 장르에서 찾아내고자 한다. 그는 프롤레타리아 연극의 관객을 확보하기 위해서 극장공연무용론을, 노동자 농민 대중을 관객으로 조직하기 위해서 드라마리그론을, 그 관객집단이 프롤레타리아 연극운동을 일상생활의 활동으로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 소인극적 활동론을 내세운다. 이러한 노동자, 농민 대중 관객의 확보, 조직집단화 그리고 상설공연을 가능하게 하는 공연양식은, 관객집단의 현실문제를 내용으로, 관객과의 접근성을 바탕으로 한 형식에 의해서 실천될 수 있다. 그 형식은 시 형식에서는 ‘짧은 어구’를, 연극 형식에서는 ‘극적 앨랜지(엘레지), 간단한 제스츄어’를 빌려오는 슈프렛히콜이다. 따라서 그의 예술대중화론은 당위적인 명제로 모든 예술의 볼셰비키화를, 그 방법론으로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을, 이를 방법론으로 프롤레타리아 예술의 정치적 임무 수행을 대중과 의 접근성, 그 예술적 실천 양식을 슈프렛히콜로 설정한 것이다.
목차
국문요약 1. 문제의 제기 2. 예술대중화론과 대중화 형식의 실천 1) 볼셰비키화와 프롤레타리아 동시 2) 볼셰비키화의 방법론과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 시 3) 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과 음악 형식의 대중화 4) 대중화 형식의 선택과 슈프렛히콜 3. 예술대중화론의 비평사적 의의 4.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대중화론볼셰비키프롤레타리아 리얼리즘극장공연무용론드라마리그이동식활동소인극슈프렛히콜Art-PopularizationBolshevikizationThe Proletarian Realismthe useless theory of indoor performingthe theory of Drama Leaguethe theory of an itinerant troupeThe theory of Sprech-chor
한중인문학회 [The Society of Korean & Chinese Humanities]
설립연도
1996
분야
인문학>중국어와문학
소개
한중인문학회는 대우재단과 한국국제교류재단의 지원으로 중국 대학의 한국연구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한국학 연구를 활성화시킬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한국에서는 서울대, 고려대, 아주대, 성균관대, 동국대, 연세대, 방송대, 과기대, 정문연, 순천향대, 남서울대, 울산대, 전남대, 충남대, 숭실대, 한남대, 경북대, 부산대, 영남대 등을 중심으로 전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중국에서는 북경대, 남경대, 복단대, 절강대, 산동대, 요녕대, 화동사대, 중앙민족대, 북경어언문화대, 중국사회과학원, 남개대, 중앙민족대, 낙양외국어대, 서북대 등을 중심으로 중국의 각 대학의 인문학 전공 교수들이 회원으로 가입하였다.
여기에 중국과 한국의 언어문화 및 관계사에 관심이 많은 일본, 대만,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참여하여 동아시아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업에도 전념하고 있다.
1) 한국, 중국에서 매년 한 차례씩 한국, 중국, 대만, 일본, 미국, 러시아의 학자들이 학술 세미나를 열어서 양국의 인문과학에 편재되어 있는 보편성을 탐색한다.
2) 학술 세미나에서 논의된 내용을 중심으로 논문집을 발간하여 양국 학자들의 관심 사항을 널리 알리고, 그러한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협조한다.
3) 양국의 문화 유산을 답사하는 작업이다. 중국의 항주 일대와 고려 시대의 유적과 유물, 중국의 동북 지방과 고구려의 유적과 유물, 상해와 독립 운동 등에 대한 답사를 통하여 중국과 한국의 문화의 뿌리를 직접 확인한다.
4) 양국 문화에 뿌리 내리고 있는 보편성을 추출하여 세계 문화의 한 축인 동아시아 문화의 정체성을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