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order to answer the question whether or not the using of an embryo is justified, we must answer first whether or not the embryo has the right to life. We can answer this question by considering whether or not the grounds of the right which we can find in an adult are found in an embryo. When an adult is killed, people who are around the one feel extreme fear and anxiety. This is one ground of the right. But when an embryo is killed, its death does not evoke same fear and anxiety. Therefore it can not have the right to life on this ground. When an adult is killed, he is deprived of his high-level and spiritual life. This is another ground of the right. If an embryo were same with the adult who is grown from the embryo, it would have the right. But we can not see like this because the embryo has the possibility of twins. When an embryo is died he is only deprived of a few unconscious days. We can conclude that an embryo has no right to life.
한국어
오늘날 쟁점이 되고 있는 ‘배아의 연구나 이용은 정당화될 수 있는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배아에게 생명권이 있는가를 따져 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인간 성인을 살펴 그 생명권의 근거는 무엇인지 밝힌 다음 이 근거를 배아도 가지고 있는가 확인해 보면 된다. 성인을 죽이면 주변의 사람들은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게 되므로 이런 해악을 방지하기 위해 성인에게 파생적으로 생명권이 부여된다. 하지만 배아의 죽음은 주변에 극심한 불안과 공포를 불러 일으키지 않으므로 이런 근거에서는 생명권이 있다고 할 수 없다. 성인을 죽이는 것은 또한 그로부터 정신적인 고차원의 삶을 박탈하므로 성인은 이런 해악을 입지 않을 생명권을 갖게 된다. 배아는 만약 그것이 그로부터 자라날 성인과 동일한 존재라면 같은 근거에서 생명권을 갖겠지만 아직 쌍둥이 가능성이 있어서 그렇게 볼 수 없다. 실제로 배아가 죽임을 당할 때 빼앗기는 것은 십수일의 무의식적인 삶으로 생명권의 근거가 되기에는 미흡하다. 그렇다고 배아로 부터 자라날 성인의 ‘존재할 권리’에서 배아의 생명권이 파생된다고 볼 수도 없다. 이렇게 어떤 근거에 비추어 보아도 배아에게 생명권이 있다고 인정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목차
요약문 1. ‘14일 이전 배아1)의 도덕적 지위’에 대해 답할 필요성 2.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한 방법 3. 죽임이 가하는 고통 가. 죽는 자 자신이 느끼는 고통 나. 주변인들이 느끼는 불안과 공포 다. 배아의 경우 4. 죽임이 박탈하는 삶 가. 성인의 경우 나. 배아의 경우 5.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배아생명권쌍둥이 가능성가능적 존재자EmbryoRight to LifePossibility of ※ Twin. Possible entity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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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