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ese Arbeit versucht den Begriff ‘Wissen des Wissens’ aus dem klassischen Text Platons, Charmides, und dessen Interpretationstradition interkulturell zu überprüfen. Die interkulturelle Philosophie bedeutet eine Bemühung, keine Kultur zu bevorzugen, alle Kulturen für gleichwertig zu halten und sie miteinander sprechen zu lassen. Doch hier steht der Eurozentrismus im Wege. Für die deutschsprachigen Interpreten scheint das Wissen des Wissens als die Selbstbezüglichkeit des Subjekts sehr bedeutungsvoll zu sein, und so versuchten sie es deutsch idealistisch darzustellen. Ich werde es vorzeigen, dass solche eine Tendenz der Interpretationen eine selbst-zentrische des Deutschen, oder eine euro-zentrische ist. Jedoch ist solch eine Tradition gar nicht universal, sondern eine Wahl von vielen möglichen Optionen. Das kann man aus Nagarjunas Auffassung über die Selbstbezüglichkeit leicht erkennen. In Charmides bestimmt Sokrates die Besonnenheit als ‚Selbsterkenntnis’ oder ‚Wissen des Wissens’; mit anderen Worten das selbstbezügliche Wissen. Darüber hinaus zweifelt Sokrates an die Möglichkeit z.B. des selbstbezüglichen Sehens oder des Hörens. Seit Hegel haben deutsche Gelehrte diese Selbstbezüglichkeit im Horizont des deutschen Idealismus zu interpretieren versucht. Für Hegel und Apelt ist das Wissen des Wissens die Selbsterkenntnis des Geistes. Dagegen nimmt Martens es als Selbsterkenntnis des Gottes an und daher als etwas Unmögliches für den Menschen; der Mensch kann nur das Wissen besitzen, das sich auf das Vorgegebene bezieht. Im Gegensatz zu den deutschen oder europäischen Traditionen verneint Nagarjuna völlig die Selbstbezüglichkeit des Wahrnehmens und schließt daraus die Ablehung des Wahrnehmens selbst und des Objekts des Wahrnehmens. Unterschiedliche Auffassungen der Selbstbezüglichkeit entstanden aus verschiedenen Voraussetzungen der westlichen und der östlichen Philosophie. Während die europäische Philosophie das An-sich-Sein annimmt, setzt die buddhistische das gegenseitig abhängige Entstehen voraus, von dessen die Folgerung folgt, dass jedes Sein an sich selbst leer sei. Aus diesen verschiedenen Standpunkten haben sich unterschiedliche Philosophien entfaltet. Die interkulturelle Philosophie folgt nicht die Absicht, die eine Option zu akzeptieren und die andere zu verneinen. Dennoch ist es nicht zu übersehen, dass im Bedürfnis des Dialoges verschiedener Kulturen der Standpunkt Nagajunars bedeutungsvoll erschei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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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서양철학의 고전인 플라톤의 Charmides편에 나오는 ‘지식의 지식’을 상호문화적으로 검토하려는 시도이다. 상호문화성이라 함은 어떤 특정한 철학을 중심으로 삼지 않고 모든 철학들을 동등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것들 서로가 서로와 동등한 입장에서 대화하도록 유도하려는 노력이다. 그런데 이에 큰 장애물이 서구중심주의이다. 독일측 해석자들에게 ‘지식의 지식’은 주체의 자기 연관성(Seblstbezüglichkeit)으로서 독일관념론적으로 대단히 심오한 주장으로 보여졌으며 그래서 그들은 자기 독일적 전통으로 해석해왔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독일인의 자기 중심적인 태도, 혹은 더 크게 말해서 서구 중심적인 태도임을 보여 주려고 한다. 그런데 서구 철학적 전통은 여러 가능성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한 것이고 보편적인 것이 결코 아니다. 이를 잘 보여줄 것이 서구적 이해와는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용수의 자기 연관성에 대한 해명이다. Charmides편에서 절제는 ‘자기 인식’과 ‘지식의 지식’으로 규정된다. 즉 자기 연관적 지식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기 연관성이 봄이나 들음 같은 것들에도 적용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런데 헤겔을 필두로 한 독일 해석자들은 이 자기 연관성을 독일 관념론적 지평에서 이해하려고 한다. 그래서 이를테면 헤겔과 그에 이은 Apelt 같은 경우에 ‘지식의 지식’을 이성의 고유한 기능으로 이해한다. 그에 반해서 Martens 같은 경우에는 ‘지식의 지식’을 ‘신의 자기 지식’으로 이해하는데, 플라톤은 이러한 자기 연관적 지식이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이해한다. 인간은 단지 대상에 대해서만 지식을 가질 수 있을 뿐이다. 그에 반해서 용수에 따르자면 보는 작용과 같은 인간의 지각작용의 자기 연관성은 지각 작용 자신을 부정하게 만들고 더 나아가 지각 대상조차 부정하게 만든다. 이러한 지식의 자기 연관성에 대한 상반된 이해는 서양 철학과 동양 철학의 근본적 다른 전제들로부터 기원한다. 서구에서는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으로 여기는 데에 반해서 불교적 전통에서는 서로 서로 의존되어 생겨난다고 믿는다. 어떤 존재도 그 자체로는 공하다. 이러한 출발점의 차이가 그 이후에 전혀 다른 철학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상호문화 철학은 이러한 두 철학 중 하나가 맞고 하나가 틀리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대화가 필요한 시기에 상의적 철학이 흥미로운 것은 사실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상호문화성 3. Charmides의 본문 4. 독일관념론적 해석 5. 용수의 중론 6. 비교와 대화의 시도 가. 즉자적 존재와 상의적 존재 나. 최고의 존재자의 특징으로서의 자기 연관성과 자기 연관성의 공허함 다. 나르시스의 꿈과 아공(我空) 7. 결론적 논평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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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