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s Ziel dieses Aufsatzes ist klarzumachen, wie sich die positive Suche der Sokratischen Maieutik nach dem Erkennen der Wahrheit in seinem Elenchos zeigt. Wir haben den Wert und die Notwendigkeit dieses Problembewusstseins aus zwei Deutungssichten erlaeutert . Erstens, die Gegner des Sokartes in den Dialogen verzerren seine ernste Suche nach der Wahrheit aufgrund dessen als eine unmoralische Heuchelei, dass er immerhin seinen Genger der negativen Kritik unterwift. Zweitens, R. Robinson und G. Vlastos, die den Elenchos als eine systematsiche Methode des fruehen Sokrates rekonstruiert haben, nehmen die ‘sophistische’ Perspektive zum Teil an und legt den Elenchos als die rein praktische Suche dar, die der Natur nach privat und persoenlich, und methodisch mangelhaft ist, und mit der theoretischen Erkenntnis nichts zu tun hat. Wir haben den Elenchos als dialektische Methode des Sokrates in den fruehen Dialogen zu deuten versucht, der als Fragender, der Unwissender und intellektuelle Herbamme philosophiert, und folgende drei Ergebnisse hervorgebracht: Erstens, der Elenchos ist eine unpersoenliche Suche, die v.a. die Behauptung p an dem Widerspruchssatz prueft und nebensaechlich den Behauptenden und sein Leben kritisiert. Zweitens, der Elenchos, indem er die Wahrheit der p und ∼p aus den Meinungen deduziert, die der Antwortende, wenn er behauptet p, implizit voraussetzt oder annimmt, erweist die ― notwendig die ∼p begeitende ― p und die ― notwendig die p begleitende ― ∼p zugleich als ‘unrichtige Antwort’ auf die Was-Frage. Daher ist das sog. Problem des Elenchos, dass es keine logische Notwendigkeit gibt, eine von p und ∼p fuer falsch zu halten, kein echtes Problem des Elenchos. Drittens, der Elenchos, der unmissverstaendlich zeigt, dass die Kontradiktion der p und ∼p die Unterscheidbarkeit des definiend erhebt, fordert den Antwortenden die Notwendikeit auf, anhand der Differenzierung immerhin die Erkenntnis des Eidos zu suchen, und der Antwortende brweist die positive Wirkung des Elenchos fuer die Erkenntnis des Eidos, indem er das definiens tatsaechlich findet, das zur Klarmachung der Unterscheidbakeit des Eidos viel mehr angemenssen ist. Aus der bisherigen Diskussion koennen wir feststellen, sowohl dass Sokrates in seinem Elenchos seine meieutische Suche nach dem Erkennen der Wahrheit ausgezeichnet praktiziert, als auch dass die Perspektive der modernen Elenchos-Deutung, die zum Teil von der sophistischen abhaengt, die eigenartige Weise des Sokrtischen Philosophierens wesentlich verzer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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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논의의 목표는 소크라테스의 논박이 그의 산파술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진리 인식의 정신을 구현하는 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의의와 필요성을 두 가지 해석적 시각으로부터 해명하였다. 하나는 대화편에 등장하는 소피스트류의 답변자들이 소크라테스가 소극적 비판으로 일관한다는 것을 근거로 그의 진리추구의 정신을 부도덕한 위선으로 왜곡한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논박을 소크라테스의 방법론으로 체계화한 로빈슨과 블라스토스 역시 논박을 바라보는 ‘소피스트적’ 시각을 부분적으로 수용하고 논박을 (1)본성상 사적이고 개인적인, (2)방법적으로 불완전한, 그리고 (3)이론적 인식과 무관한 순수한 실천적 탐구로 규정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논박을 ‘질문자’로서, ‘무지자’로서, 그리고 ‘산파’로서 철학하는 초기대화편의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적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탐색했고, 다음 세 가지 사실을 밝혔다: (1) 논박은 모순율이라는 초개인적 규칙 하에서 주장 p를 시험하고 부수적으로 주장 p의 주장자나 그의 삶을 비판하는 ‘비개인적인’ 탐구이다. (2) 논박은 답변자가 p를 주장할 때 암묵적으로 전제하거나 수용하는 확신들로부터 p와 ∼p의 참을 동시에 연역함으로써 ‘무엇물음’에 대한 ‘올바른’ 답변으로서의 자격을 ― ∼p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 p와 ― p를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 ∼p 모두로부터 박탈한다. 따라서 p와 ∼p 가운데 어느 하나를 거짓으로 선택해야 할 논리적 필연성은 없다는 ‘논박의 문제’는 대화편에 존재하는 않는 허구적 문제이다. (3) 논박은 p와 ∼p의 모순이 피정의항의 구별가능성을 지양한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답변자에게 ‘구별’을 통해 ‘인식’을 계속 추구해야 할 필요성을 내면화시키며, 실제로 답변자는 형상의 구별가능성을 드러내는 데 보다 적합한 정의항을 발견하는 데까지 나아감으로써 스스로 형상 인식을 위한 논박의 적극적 효력을 입증한다. 이상의 논의로부터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논박에서 그의 산파술이 추구하는 적극적인 진리인식의 정신을 충실하게 구현하고 있다는 것뿐 아니라 ‘소피스트적’ 시각이나 그에 부분적으로 의존하는 현대적 해석 시각이 소크라테스의 철학하는 고유한 방식을 본질적으로 왜곡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혔다.
목차
요약문 1. 논박과 산파술 2. 논박에 대한 현대적 해석: 로빈슨과 블라스토스 3. 논박의 대상과 규칙 가. 논박의 대상 나. 논박의 규칙 4. 논박의 절차와 그 정당성 5. 논박의 성과 6. 요약과 과제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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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