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tgenstein insists that we need not only agreement in definitions but also agreement in judgements for linguistic communication. For Wittgenstein, the meaning of language is shown in the way it is used. Therefore it is misleading to interpret 'definition' as a rule of using words and 'judgement' as a way of its application. Wittgenstein opposed to the tendency to explain communication by something mental. Meaning, rule, and a way of application of rule are not mental at all. Therefore we should not regard an agreement in judgements as anything mental. The agreement in judgements signifies agreement in actions. Wittgenstein talks about the propositions which has a form of experiential proposition but can not be the object of suspect and examination in our belief system. For linguistic communication, we should agree with these propositions. Hinge propositions present a kind of action, a way of human action. Therefore agreement in judgements signifies agreement in actions, especially means agreement in actions that hinge propositions shows. Wittgenstein's position which does not try to explain by anything mental was accepted by analytical philosophers such as Davidson and Dummett. Dummett calls the necessary agreement for communication a 'convention'. According to Dummett, language transcends linguistic behavior of individuals by acknowledging the existence of common language, so the individual understands it partially. However, from Wittgenstein's viewpoint, Dummett can be estimated as someone who still did not get out of the concept of general communication. Like Wittgenstein, Davidson doesn't appeal to anything mental in explaining about communication but appeal to mind to interpret meaning. Whereas Davidson finds the possibility of meaning and language in charity and rationality, Wittgenstein finds that in behavior and practice which we use language. Wittgenstein does not explain use of language by a priori conditions about human nature as well as by reality which is independent from use of langu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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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겐슈타인은 언어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정의들에서의 일치뿐 아니라 판단들에서의 일치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이 볼 때 언어의 의미는 우리가 그것을 사용하는 방식에 의해 특징지어지기 때문에 정의들에서의 일치를 낱말의 사용 규칙의 일치로, 그리고 판단들에서의 일치를 규칙의 적용 방식의 일치로 해석하는 관점은 길을 잘못 든 것이다. 의미와 규칙뿐 아니라 규칙의 적용 방식 역시 정신적인 어떤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판단들에서의 일치를 정신적인 어떤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그 일치는 행위들에서의 일치를 말한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은 경험 명제의 형식을 지니고 있으나 우리의 믿음체계 내에서 의심과 검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축 명제들에 대해 말하고 있는데, 언어적 의사소통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러한 명제들에 일치해야 할 것이다. 축 명제는 일종의 행위, 인간의 행위 방식을 나타낸다. 따라서 판단들에서의 일치는 무엇보다 축 명제가 나타내는 행위들에서의 일치를 의미한다. 의사소통을 정신적인 것에 의해 설명하지 않는 비트겐슈타인의 입장은 이후의 분석철학자들에게 수용되는데, 데이빗슨과 더밋도 이러한 관점에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다룬다. 그런데 더밋은 공통 언어의 존재를 인정함으로써 언어가 개인의 언어적 행위를 초월한다고, 그래서 개인은 단지 부분적으로만 그것을 이해할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더밋은 일반적인 의사소통 개념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데이빗슨은 비트겐슈타인과 마찬가지로 의사소통을 설명하면서 심리적인 어떤 것에 호소하지 않는다. 그런데 데이빗슨은 의미를 해석하기 위해서 마음에 호소한다. 데이빗슨은 의미와 언어의 가능성을 자비, 합리성과 같은 것에서 찾는 반면에,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사용하는 실천, 행위에서 찾는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사용을 언어 사용과 독립된 실재에 의해서 뿐 아니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어떤 선험적 조건들에 의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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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