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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크의 종교적 관용론 ― 보수주의적 관용에서 자유주의적 관용에로 ―
Locke's Religious Toleration: from conservative to liber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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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바로가기
  • 통권
    제8집 (2000.06)바로가기
  • 페이지
    pp.141-159
  • 저자
    최유신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9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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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It has been said that Locke was a liberalist but Cranston insists that Locke in his mid-twenties was certainly as yet no liberal. Locke, for the time being, remained convinced that most of the dissenters in seventeenth-century England were too dangerous to be tolerated. In 1659 Locke wrote a long letter to Henry Stubbe, which seemed sympathetic to him, but Locke forcibly opposed to Stubbe's view that Catholics had to be tolerated..
In the winter of 1660-1661 he became engaged in a controversy over the right of the magistrate to interfere in matters of religious worship. Here he declared that "No one could have a greater respect and veneration for authority than I." Cranston views Locke at this time as manifestly Hobbesian.
In 1666 Locke began his long association with Lord Ashley (to become the first Earl of Shaftesbury in 1672) - a relationship which is commonly believed to have had a profound influence on Locke's attitude toward religious toleration. Locke was writing the Essay on Toleration within a year after meeting Ashley, in which Locke insisted that Protestant Nonconformists should be extended toleration, as their opinions are not a danger to the order of the state.
Two years after writing the Essay on Toleration Locke drafted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for the Government of Carolina. Here he maintains that no person of any other church is to disturb or molest any religious assembly or use any reproachful, reviling, or abusive language, against the religion of any church or profession.
In 1683 Locke was forced to take refuge as a political exile in Holland. His connections with Shaftesbury had been too close to allow him to remain in England after his patron's fall. It was during his exile in Holland, probably in 1686, that Locke wrote his famous Epistola de Tolerantia which represented his thought on toleration in clear and systematic manner. This treats the subjects in the Essay on Toleration in the comprehensive and delicate standpoint.. He argues that "religious toleration is so agreeable to the Gospel of Jesus Christ, and to the genuine reason of mankind, that it seems monstrous for men to be so blind, as not to perceive the necessity and advantage of it, in so clear a light."
한국어
흔히들 로크는 이미 그의 사상 초기부터 종교적 관용을 옹호한 사람으로 알려져 왔었다. 그러나 크랜스톤의 해석에 의하면 로크는 이십대 중반에는 분명히 자유주의자가 아니었다고 한다. 로크는 한동안 대부분의 17세기의 비국교도들에게 종교적 관용을 허용하는 것은 너무 위험한 일이라는 확신을 가졌었다. 로크는 1659년에 헨리 스튜브에게 긴 편지를 썼는데,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관용에 대해서 동정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그는 가톨릭교도들에게 자유를 허용하자는 스튜브의 제안을 강력하게 반대했다.
스튜브에게 보낸 편지를 시작으로, 로크는 1660년과 1661년에 걸친 겨울에 종교적 예배와 관련해서 통치자가 관여할 수 있는 권리의 한계에 대한 논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여기서 로크는 “나만큼 권위를 존경하고 숭앙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크랜스톤은 이러한 로크의 생각을 “명백히 홉스적”이라고 보았다.
1666년에 로크는 1672년에 샤프츠베리 백작이 된 애쉴리경과의 오랜 친교를 시작하게 된다. 이 친교를 통해서 로크의 종교적 관용에 관한 태도는 깊은 영향을 받게된다. 로크는 애쉴리를 만난지 1년도 채 못되어서 관용에 관한 그의 첫 번째 에세이(Essay on Toleration)를 썼다. 여기에서 그는 프로테스탄트 비국교도들에 대해서 관용을 허용하고자 했다. 왜냐하면 그들의 견해는 국가의 질서에 위험을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Essay Concerning Toleration을 쓰고 난 이년 후, 로크는 The Fundamental Constitutions for the Goverment of Carolina을 초안했다. 이 초안에서 로크는 “어느 교회의 어느 누구도 다른 종교의 집회를 방해하거나 해를 가해서는 안되며, 다른 교파나 종교적 고백에 대해서 비난이나 비방을 하거나 욕을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개인에게도 적용된다. 즉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종교적 견해나 예배방식에 대해서 훼방하거나 괴롭히거나 박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1683년에 로크는 네덜란드로 정치적 망명을 가게 되었고, 1685년 겨울 경에 그의 관용론을 가장 체계적으로 명쾌하게 설명한 라틴어로 된 Epistola de Tolerantia를 쓴 것으로 알려진다. 이것은 Essay on Toleration의 주제를 보다 포괄적인 관점에서 훨씬 더 정교하게 다루고 있다. 로크는 “종교적 관용이야말로 본래의 예수그리스도의 복음과 인간의 순수한 이성에 참으로 적합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렇게 명백한 빛을 통해서 종교적 관용의 필요성과 이점을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어리석다면 그들은 괴수나 마찬가지이다.”라고 주장한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는 말
 2. 초기의 관용 사상
 3. 자유주의적 관용 사상
 4. 『관용에 관한 편지』(A Letter concerning Toleration)
 5. 나가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로크 관용 종교 국가 중립적Locke toleration religion magistrate indifferent

저자

  • 최유신 [ Choi, You-Shin | 선문대학교 철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5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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