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article aims at examining the ethical dimension of 'sensation(vedanā' in the Pali Nikayā of Early Buddhism. The Buddha analyzes a sensation and develops a strategy in order to obtain happiness(nibbanā. The Buddha uses several categories in analyzing sensations. The primary category among them is to divide sensations into three in terms of pleasure and unpleasure. He divides all sensations into a pleasant sensation(sukha vedanā, an unpleasant sensation(dukkha vedanā, and a neutral sensation (adukkhamasukha vedanā. The goal of the strategy to sensations is to destroy greed, anger/hatred, and confusion that exist in the three sensations respectively. 'Ceasing sensation' emphasized by the Buddha also means to destroy these three unwholesome minds. We seek for a pleasant sensation. According to the Buddha, a pleasant sensation is not a true sensation but a low. For a pleasant sensation finally leads us to suffering. The Buddha understands pleasant sensations hierarchically. Better pleasant sensations are obtained from the various stages of the jhāic meditations. The best one is the pleasure of the final ninth jhāic meditation(nirodha-samāatti) which is the status of the cessation of perception and sensation(saññサāvedayita-nirodha). In the status of the cessation of perception and sensation in the ninth jhāic meditation, one destroys greed, hatred, and confusion throughly. Consequently, he/she gets the highest pleasure(sukha). Yet he/she is completely free from sensational desires and pleasures. From an ethical perspective, the one who destroys greed, hatred, and confusion reaches at the point of moral perfection. He/she does not have immoral dispositions at all because he/she dries up the source of all evils, namely, the three unwholesome minds. His every action means happiness because his all di spositions are in accordance with morals. This status is similar to not the status of enkrateia but of sophrosune in Aristotle's ethics. Destroying the three unwholesome minds means neither total acceptance of sensation nor rejection of sensation. The gist of destroying the three minds is to feel only given sensations by external objects. In order to do so, we need to see the qualities of sensation raised by them as they are(yāhabutha). Also, we need to be sensitive to whatever happens. That is why we are required to be mindful. At this point, we can adopt various medi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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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초기불교 팔리어 경전에 나타난 감각(vedanā)에 대한 분석과 전략에 대하여 고찰함으로써 감각에 대한 전략의 윤리적 차원을 탐색한다. 필자는 붓다의 감각에 대한 분석과 전략이 윤리의 최고 목표인 행복(nibbāna)으로 귀결된다고 본다. 감각에 대한 붓다의 전략이 목표로 삼는 지점은 도덕적인 완성의 자리이기도 하지만 행복성취의 자리이기도 한 것이다. 붓다는 감각을 여러 가지 방식으로 분류하고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방식은 쾌고라는 기준에 의한 것이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모든 감각은 즐거운 감각(sukha vedanā), 괴로운 감각(dukkha vedanā), 그리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감각(adukkhamasukha vedanā)으로 분류될 수 있다. 감각에 대한 전략의 핵심은 세 감각 각각의 배후에 있는 탐욕(rāga, ), 성냄/혐오(dosa, ), 어리석음(moha, )이라는 나쁜 성향을 지멸시키는 것이다. 붓다가 말하는 "감각의 지멸"도 (감각자체의 지멸이 아니라) 세 감각 배후의 탐진치 지멸을 의미한다. 보통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여섯 감각기관을 통한 즐거운 감각이지만 붓다에 의하면 이것은 추구할 만한 진실한 즐거움이 아니며 저급한 것이다. 이것은 그 무상성으로 인하여 오히려 고통의 원인이다. 붓다는 즐거운 감각들을 위계적으로 파악하여 선정 속에서의 즐거움(sukha)을 높게 보며 그 중에서도 아홉 번째 선정, 즉 멸진정(nirodha-samāpatti)에서의 즐거움을 가장 높은 즐거움으로 본다. 생각과 감각지멸(saññā-vedayita-nirodha, )의 멸진정의 상태에 있는 사람은 탐진치를 완전히 지멸시켜 최고의 즐거움을 느끼지만 감각적 욕구나 감각적 즐거움에 의해 속박 받지 않는다. 세 감각의 배후에 있는 탐진치를 지멸함으로써 행복에 도달한 사람은 윤리적 관점에서 볼 때 도덕의 완성지점에 이른 사람이다. 그는 탐진치라는 성향을 지멸시킴으로써 모든 악의 근원을 뿌리뽑은 사람이기 때문에 비도덕적 성향을 갖지 않는다. 자신의 성향은 항상 도덕과 합치하기 때문에 그(녀)에게 있어서 도덕적 행위는 그 자체가 행복을 의미한다. 그가 도달한 이러한 도덕적 상태는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절제(sophrosune)-억제(enkrateia)가 아니라-의 상태와 유사하다. 탐진치 지멸은 감각에 대한 증폭적인 수용도 아니지만 감각에 대한 무감각은 더더욱 아니다. 세 가지 감각은 일차적으로 외부대상에 의해 야기되므로 대상에 의해 촉발된 만큼만 느끼는 것이 탐진치 지멸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 대상이 갖는 속성에 대하여 여실하게 보는 것(yathābhūta)이 필수적이며 상황에 대하여 셈세한 감수성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 시점에서 주의집중의 깨어 있는 상태의 습관화가 요청되며 여러 가지 명상법들이 유용하게 활용된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2. 연기설에 있어서 감각: 지멸의 대상 3. 감각에 대한 분석과 즐거운 감각의 위계성 4. 감각의 속성에 대한 성찰과 대응전략 5. 감각에 대한 전략의 귀결 : 닛바나 6.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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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