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philosophie derniè de Merleau-Ponty demeure tacite relativement en comparaison de la philosophie premièe. On dit que il a travailléàconvertir le systèe phéoméogique en le systèe ontologique il y a quelque ans avant sa mort. On peut savoir par quelque phrases dans sa note àtravail en 1959 que il a déouvu la limitédu systèe phéoméologique, que il a travailléàéhapper la prison de la conscience. Mais ce projet ontologique de Merleau-Ponty n'etait pas réliséen ses travaux systèatique àla fin àcause de sa mort soudaine en 1961. Au minimum Je veux donc montrer cette conversion ontologique par le chiasme de la chair qui joue le role du seuil dans sa ontologie. L'idé de la chair est un symbol concret que il a pris àdéasser la dichotomie de sujet-objet depuit la philosophie cartéienne. Malgréque Merleau-Ponty a la mentionnécomme l'ééent originaire dans la philosophie de nature préocratuque, elle n'est pas l'idé du hylozïme mais est signifécomme la corporétéoriginaire en sens que la chair peut êre transforméen les fugures et les structures variés. Ces transformations de la chair ne sont rélisables que par mouvement du chiasme. Le mot du chiasme est venu de l'emploi de la rhéorique dont il signifie l'arrangement entrecroiséde deux phrases. Merleau-Ponty a pris l'idé de l'allochire de Husserl et a éendréàeclaircir le paradoxe du altéité c'est àdire le phéomèe de l'echange instable du regard entre le Je et l'autre. iI s'appelle une identitéqui se figuire en chair. En plus Merleau-Ponty a dit que le corps ou la chair a ééla puissance anonyme depuit sa pensé premièe de mêe cause que Nietzsche a dit que le corps a consistéde l'entrelac de forces positives et rêctives. Le vecteur de ces forces est la puissance que Merleau-Ponty a mentionnécomme l'essence du corps. Cette homologie entre la puissance de Merleau-Ponty et de Nietzsche signifie que Merleau-Ponty aussi a recherchéla géélogie du sujet de mêe que Nietzsche a fait. En concluson, il a déasséla limité� du systèe phéoméologique par sa géélogie ontologique et a enfin délaréla mort du humain, que l'éprit du humain n'est plus de cogito cartéien, de conscience transcendentale, mais des plis topologiques dans le cor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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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를로-뽕띠가 죽기 전 9년 간의 철학적 여정은 그의 체계적인 저작들의 부재로 상대적으로 침묵 속에 남아 있다. 그의 파편적인 작업 노트를 통해서 우리가 그나마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현상학적 체계에서 존재론적 체계로의 전환을 꾀하려 했다는 것인데, 본고는 이러한 그의 존재론적 전환을 살의 키아즘을 통해서 모색하는 하나의 존재론적 퍼스펙티브이다. 전기에 그는 익명적 신체를 근원으로 하는 현상학적 체계를 전개시켰던 반면, 후기에 그는 신체의 코기토적 성격을 거세하기 위해 신체라는 용어와 더불어 살이라고 하는 존재론적 상징을 사용하게 된다. 고대 자연 철학의 원소들과 유사한 상징인 살은 다양한 형태와 구조들로 변형될 수 있는 근원적인 유형성을 의미한다. 살은 전기의 철학에서 그가 고수할 수밖에 없었던 주체와 대상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하나의 존재(Êre)를 구현한다. 현상학적 체계에 고유한 선험적 의식 대신 유물론적인 냄새가 나는 이러한 신체나 살을 강조함으로써 그는 전기의 데카르트적 잔재를 완전히 떨어낸다. 그는 전기에서부터 천착했던 이중 감각(allochire)을 발전시켜 나와 타자의 교환적 응시 현상을 언급했는데, 이러한 나와 타자의 교차 배어(키아즘)를 통해서 형태지어지는 일종의 동일성을 살이라고 칭했던 것이다. 구조주의자들이 말하는 구조 변형은 이러한 살의 키아즘에 의해서 설명 가능하다. 동시에 우리는 신체를 익명적 힘이나 고유 운동성으로 해명했던 전기의 사상을 계승하면서 그의 살 개념을 니이체의 긍정적 힘과 반동적 힘의 얽힘으로 재해석할 수 있는데,. 이러한 재해석은 데카르트의 성찰 이래로 선험적으로 생각되었던 의식을 반동적 힘의 계보학적 생성에 불과한 것으로 해체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니이체나 들뢰즈와 마찬가지로 메를로-뽕띠는 의식에 대한 신체의 우위성을 거론함으로써 인간(초월적 의식)의 죽음을 선언한 셈이다.
목차
요약문 Ⅰ. 메를로 - 뽕띠 후기 철학의 애매성 Ⅱ. 살이라는 존재(Être) Ⅲ. 키아즘 Ⅳ. 힘들의 얽힘 Ⅴ. 주체의 계보학적 위치 Ⅵ. 맺음말 참고문헌 Resume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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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