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ns cette étude, j’ai tenté de montrer comment l’autre peut être pensé au-delà de l’horizon du Même. Comme souvent dans la philosophie ocidentale on le pense, l’autre est un autre dans le savoir, autre qui est suffisamment réductible au savoir et à son objet. Par contre, pour Levinas, l’autre est absolument autre et reste toujours irréductible au savoir et au Même. En ce sens, il apparaître insaissasable à l’égard du savoir et de la manifestation. Au point que l’autre refuse la présence dans le présent de la conscience, il ne s’appuie pas sur l’origine, ni sur le principe. A cet égard, l’altérité est anarchique au sens où elle précède l’origine et la manifestation. C’est pourquoi lorsque Levinas parle du rapport avec l’altérité de l’autre, elle est éthqiue et la resposnabilité pour l’autre est différente de la forme de présence comme principe et ne repose pas sur le présent du Moi. En ce sens, elle m’est assignée en deçà de ma liberté et du présent de la conscience, au sens anarchique de l’altérité de l’autre. La détermination lévinassienne de la responsabilité consiste à rompre avec le Je peux et avec son engagement libre. Le surplus de la resposnabilité implique déjà, en certain sens, l’asymétrie. Dans la mesure où l’altérité refuse l’activité du moi dans le présent, le rapport du moi à l’autre n’est pas un rapport réciproque et symétrique. L’asymétrie que Levinas appelle le rapport éthique indique une inadéquation extraordinaire selon laquelle l’obligation s’accroît au fur et à mesure de mon obéissance. A cause de cette inadéquation, le sujet se trouve sous l’accusation d’autrui et paradoxalement il peut s’y affrachit de l’être et du Même. Le lieu où cet affranchissement s’effectue est la proximité où le moi ne trouve aucun refuge dans le savoir ou dans le concept. Ainsi, il s’y laisse exposer à l’autre. Par là, le sens éthique se montre dans le surplus de la resposnabilité toujours démesurée et disproportionnée et il accopagne la passion qui, comme crainte pour autrui, vide le moi de l’être avant la prise de conscience. Lorsque le sens éthique ou la responsabilité atteint le moi hors du savoir et du pouvoir du sujet, le non-origine du moi se laisse exposer à l’altérité de l’autre comme un choc, un bouleversement. Par ce choc et ce bouleversement, j’ai essayé de montrer la relation de l’anarchie et de la subjectivité éthqiue et le sens de l’ouverture éthique.
한국어
이 연구는 어떻게 타자를 동일자의 지평 너머에서 사유할 수 있는가에 질문을 답하고자 했다. 흔히 서구철학에서 타자는 인식 내에서, 체계 내에서 동일자와 다른 것으로 이해되는데, 이런 한에서 타자는 언제나 인식과 인식의 대상으로 환원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반대로, 레비나스에게는 타자는 절대적 타자로 언제나 인식과 동일자의 지평에서 포착될 수 없는 자이다. 이런 의미에서 타자는 의식의 현재에 드러나지 않고, 그 기원과 종말 속에서 자기 일치성을 갖지 않는 존재이다. 여기서 기원과 원리의 거부는 타자의 타자성을 아나키(anarchie)로 규정하게 한다. 레비나스의 타자성의 연구에 있어, 특히 책임성이 보편적 원리가 아니라, 의미의 과잉으로 규정되는 이유는 타자의 타자성이 어떤 현전성 속에서 구조화되고 체계화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타자성이 아나키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타자의 부름을 통한 책임성의 일깨움은 하나의 원리가 아니라, 지속적인 증대로 표현된다. 책임성의 증대는 이미 하나의 비대칭성을 함의하는데, 자아는 언제나 타자의 부름과 자신의 응답 사이의 비대칭성 속에서 고발당하는 자로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런 고발과 책임성의 과잉을 통해서 자아는 실체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존재와 동일자의 전체성 너머 타자에게 열림을 체험하게 된다. 이 열림은 의식의 열림과 다른 윤리적 열림으로 레비나스는 이를 신체적 자아와 감성적 측면에서 설명한다. 이 열림이 실행되는 공간을 레비나스는 가까이 있음(proximité)이라 부른다. 이 가까이 있음에 들어온 자아는 모든 타자의 부름에 대해 거부하지 못하고, 절대적으로 타인에게 열려지게 된다. 이상의 연구에서 타자성, 책임성 그리고 가까이 있음을 통해 윤리적 주체성의 열림이 갖는 의미를 ‘존재와 다르게’로 이해하고자 한다.
목차
요약문 1. 의식과 동일자의 철학 2. 실체성에서 이해된 자아와 윤리적 주체성 3. 가까이 있음(proximité)과 의미성 4. 결론 참고문헌 Résumé
키워드
가까이 있음(la proximité책임성la responsabilité타자성l’altérité타자(l’autre비대칭성l’asymétrie절대적 과거le passé absolu아나키l’anarchie)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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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