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수사학의 학적 성격
Der wissenschaftliche Charakter der aristotelischen Rhetorik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2집 (2008.03)바로가기
  • 페이지
    pp.199-220
  • 저자
    한석환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920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5,8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 Die Aufgabe der Rhetorik ist nicht das Überzeugen. Der Redner will natürlich überzeugen. Wozu redet er sonst? Aber die Rhetorik ist für Aristoteles die Fähigkeit, bei jeder Sache das möglicherweise Überzeugende zu betrachten, oder (dasselbe mit anderen Worten) die Fähigkeit, Argumente zu beschaffen. Sie zählt als Kunst und nicht als Wissenschaft. Von der Wissenschaft unterscheidet sich die Kunst durch den Gegenstand, insofern sich der Gegenstand der Kunst “auch anders verhalten kann”(1140a2), während sich das, was man im Sinne der Wissenschaft weiß, nicht anders verhalten kann. Die Rhetorik ist also nicht die Kunst des Überredens, sondern die Kunst, das Überzeugung Weckende in bezug auf das, was sie vertritt, zu entdecken. Die Rhetorik vermag als die Kunst der Rede ein jegliches, das sinnvoll Gegenstand einer Rede sein kann, zu begründen. 2. Die Rhetorik wird von Aristoteles zu Beginn als das Gegenstück zur Dialektik bestimmt. Beide handeln nämlich von solchen Dingen, die zu erkennen auf gewisse Weise allen gemeinsam und nicht Sache einer begrenzten Wissenschaft ist. Deswegen haben auch alle auf gewisse Weise an beiden Anteil; “alle haben nämlich zu einem gewissen Grad damit zu tun, ein Argument zu prüfen und zu stützen, sich zu verteidigen und anzuklagen.”(1354a4-6) Rhetor, Redner ist also jeder Mensch in irgendeiner Weise und gleichsam von Natur; Arzt oder Mathematiker hingegen nicht. So spricht Aristoteles der Rhetorik eine höchst sonderbare Allgemeinheit zu. Dies irgendwie erinnert an die Allgemeinheit, die der Philosophie eignet.
한국어
만사를 수사학적 원리로 재단하려던 소피스트들에게 수사학은 거의 만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반면에 플라톤은 수사학이 아첨과 비위맞추기에 불과하다면서 사이비과학으로 몰아붙였다. 이런 가운데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느 쪽에도 치우침이 없이 수사학을 독립된 분과과학으로 확실하게 정초하였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어디서 수사학의 학적 성격을 보는가 ― 이 물음을 논하는 것이 이 글의 과제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설득은 수사학의 할일이 아니다. 설득은 연설가 고유 업무이다. 수사학의 과제는 ‘설득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을 탐구하는 것이다. 수사학은 ‘설득을 끌어낼 수 있는 것을 탐구하는 능력’이고 ‘논변을 발견하는 능력’이다. 수사학은 ‘과학’(epistēmē)이 아니라 능력(dynamis)이고 기술([rhetorikē] technē)이다. 수사학이 기술이라는 것은 체계적 이론의 성격과 숙련된 기량의 성격을 모두 갖고 있음을 의미한다. 수사학은 이론적 통찰의 계기가 없는 단순한 ‘경험(지)’도 아니고 몸에 밴 기량의 계기가 없는, 이론일 뿐인 ‘과학’도 아니다. 이도저도 아닌 것, 아니 그 두 계기를 한 몸에 모두 지닌 것, 이것이 수사학이다. 한편 아리스토텔레스의 수사학은 변증법의 ‘짝패’이다. 변증법의 자매학문으로서 수사학은 모든 사람이 웬만큼 알고 있는 것이고, 특정 과학에만 속하지는 않는 것을 그 대상으로 삼는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법 ― 삼단논법으로 대표되는 형식논리학 ― 에 학의 예비학의 성격이 있듯이, 수사학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다만, 변증법이 폭넓게 적용되는 일반이론이라면, 수사학은 필연성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의 영역에 한정되어 있을 뿐이다. 수사학은 변증법을 모본(模本)으로 그와 유사하게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예비학은 예비학이되 수사학은 비이론적 ―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것들을 다루는 ― 과학들의 예비학이다.

목차

요약문
 1. 머리말 : 아리스토텔레스는 수사학을 뭐라 규정하는가?
 2. 수사학은 설득의 과학인가?
 3. 연설의 대상과 주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4. 설득수단으로는 어떤 것이 있는가?
 5. 연설은 어떻게 분류되는가?
 6. 각종 연설의 대상과 주제에 특징적인 점은 무엇인가?
 7. 맺는말 : 수사학은 어떤 학문인가?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저자

  • 한석환 [ Hahn, Seok-Whan | 숭실대학교 철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대동철학 제42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