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고대 그리스 철학과 나가르주나에 있어서 변화와 자기동일성 문제
Das Problem von Bewegung und (Selbst)Identitt bei der antiken griechischen Philosophie und Nagarjuna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41집 (2007.12)바로가기
  • 페이지
    pp.183-206
  • 저자
    주광순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919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6,1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Aus der okzidentalen Geistesgeschichte entstand das Problem von Bewegung und (Selbst)Identität als ein unvermeidliches, das aber schwer lösbar ist. Um dies zu lösen, stellt Herakleitos die Lehre von coincidentia oppositorum auf. Er lehrt die Wirklichkeit der Welt, die die von uns erfahrenen, veränderlichen und verschiedensten Dinge übersteigt. Im Gegensatz zur menschlichen Auffassung ist alles nach Gott gut. Wenn wir die Weltvernunft, den Logos, versteht, werden wir erkennen, dass gegensätzliche Dinge eins sind. Aristoteles klärt durch seine Kategorienlehre das Bewegungsproblem auf. Seiende sind in zehn Kategorien einzuteilen. Die primäre Kategorie davon ist die Substanz, und die übrigen sind von ihr abhängig. Durch die hierarchische Einteilung der Kategorien kann Aristoteles die Bewegung und zugleich die Identität erklären. Das Phänomen von Wachstum bedeutet, dass sich die Größe als die zufällige Eigenschaft verändert, während das Wesen 'Mensch' unveränderlich bleibt. Wir können erkennen, dass die Identitätsprinzip für die westliche Philosophie wichtiger als die Bewegungsprinzip ist. Ganz anders als dies ist die Philosophie eines Indienphilosophen, Nagarjunas. Er lehnt den Primat der Identität ab und behauptet die gegenseitige Abhängigkeit. Anders als Aristoteles sieht er in dem Phänomen von Gehen, dass der Geher und das Gehen voneinander abhängig sind. Die Abhängigkeit der Tat zum Täter kann man leicht verstehen, aber das Umgekehrte scheint unerklärlich zu sein. Indem er das Gehensphnomen als 'Gehen des Gehers' formuliert, kann er die Abhängigkeit des Gehers zum Gehen erklären. Denn nicht ein Mensch, sondern ein Geher ist ohne das Gehen unmöglich. Darüber hinaus sind diese zwei weder identisch noch verschieden. Dass die Tat und der Täter nicht identisch sind, versteht sich von selbst. Aber die Behauptung, dass sie nicht verschieden sind, ist sehr merkwürdig. Wenn wir versteht, dass das Verschieden-sein für Nagarjuna das Ganz-unabhängig-sein bedeutet, dann ist seine Ablehnung der Verschiedenheit erklärbar. Nun seine Annahme von der gegenseitigen Abhängigkeit des Seienden steht in einer engen Relation zu seiner Behauptung, dass jedes Seiende, an sich selbst betrachtet, nicht aufgrund eines Eigenseins existiert und leer ist. Wenn wir z.B. den einen als groß und den anderen als klein beurteilt, ist es nur durch den Vergleich von den beiden möglich. Deswegen können wir nicht jeden, an sich selbst betrachtet, schwer beurteilen. So zeigt sich, dass der europäische Denkweg verschieden von dem des Nagarjunas ist. Und wenn wir die kantische Tranzendentalphilosophie, nämlich dass die Kategorie, wie z.B. Substanz-Attribut oder Ursache-Folge, weder in der Sinneswahrnehmung noch in dem Ding an sich zu finden, sondern letztlich auf die Vernunft zurückzuführen ist, bejahen wollen, wird die aristotelische Einteilung und Hierarchisierung der Kategorien in Frage gestellt. Daher erscheint die Lehre der gegenseitigen Abhängigkeit des Nagarjunas überzeugender.
한국어
서양철학에서 변화와 자기 동일성은 피할 수 없는 요구이면서 풀기 어려운 문제로 등장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대립자들의 통일을 말했다.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변화하고 서로 대립되는 다양한 존재자들을 초월하는 세계의 실상을 가르친다. 인간이 보는 것과는 달리 신에게는 모든 것이 좋다. 또한 우주 이성인 Logos를 제대로 이해하면 대립자들은 하나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범주론을 통해서 변화를 해명한다. 존재하는 것들은 10개의 범주들로 분류할 수 있고 이들 중에서도 최고의 범주는 실체이다. 범주들을 계층적으로 분류함으로써 그는 사물의 변화와 동시에 자기 동일성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자란다고 하는 현상은 우연적 속성인 크기는 변하지만, 본질인 사람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우리는 서양철학에서 자기 동일성이 변화보다 우위에 섬을 알 수 있다. 이는 인도의 나가르주나와는 아주 다르다. 그는 자기 동일성을 부인하고 상의를 말한다. 예컨대 ‘간다’는 현상에 대해서 나가르주나는 아리스토텔레스와는 달리 실체라고 할 사람과 그 사람의 동작을 서로서로 의존되어 있다고 이해한다. 동작이 사물에 의존됨은 당연하나 사물이 동작에 의존됨은 불합리해 보일 수 있다. 그는 이 현상을 ‘가는 놈의 감’으로 정식화함으로써 가는 놈이 감에 의존되어 있음을 설명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냥 사람이 아니라, 가는 놈은 감이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이 둘은 불일․불이이다. 동작과 사물이 같지 않음은 상식적이나, 다르지 않음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런데 다름은 나가르주나에게 단지 다르다기보다는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이해한다면, 그가 말하는 불이를 납득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존재자들이 상의되어 있다는 나가르주나의 주장은 존재자들이 그 자체로는 무자성․공이라는 주장과 연결되어 있다. 예컨대 누구를 크다 하고 다른 이를 작다고 할 때, 그 둘을 서로 비교했기 때문에 큼과 작음이 판단되지 그 각 사람 자체로는 크다고도 작다고도 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서양 고대철학과 인도의 나가르주나는 그 존재론에 있어서 아주 다르다. 그런데 우리가 칸트의 선험철학, 즉 실체와 속성이나 원인과 결과 같은 범주가 사물 자체나 혹은 감각경험 자체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성의 구성틀에 불과하다는 견해를 받아들인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들의 분류와 계층화는 의심스럽게 되고, 그 때문에 이 계층화를 거부하는 나가르주나의 상의설은 더 설득력 있어 보이게 된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변화와 자기 동일성의 충돌
  가. 헤라클레이토스
  나. 나가르주나
 3. 해결의 방식
  가. 고대 그리스
  나. 나가르주나
 4. 고대 그리스와 나가르주나의 비교적 고찰
  가. 사물과 (우연적) 속성들
  나. 원인과 결과
 5. 결론적 논평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키워드

헤라클레이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나가르주나 범주론 상의 Herakleitos Aristoteles Nagarjuna Kategorienlehre gegeseitige Abhängigkeit

저자

  • 주광순 [ Joo, Kwang-Sun | 부산대학교 철학과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대동철학 제41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