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율곡의 ꡔ노자ꡕ 주석서인 ꡔ순언ꡕ을 중심으로 ‘양생’에 대한 내용과 입장을 살펴보는데 목표가 있다. 율곡이 보는 ‘양생’의 의미는 ‘생명을 잘 기르는 것’이라고 하는 매우 기본적인 개념정의에 충실하다. 그러나 ‘양생’이 도교 수련적 맥락을 갖는, 일종의 건강을 증진하는 일이라든가 불노장생의 신선술, 또는 위생을 증진하는 일 등과 관련하여 논의되는 것이라면 이러한 측면은 오히려 율곡에게서 철저하게 배제된다. 율곡은 ‘양생’을 도교적 맥락에서 접근하지 않고 자신의 학문적 지반인 유가 성리학적 입장에서 접근함으로써 자신의 관점에서 새롭게 풀이한다. 율곡에게서 ‘양생’은 일련의 도교적 사유의 틀을 탈각하고 유가의 ‘수양론’적 범주로 설명된다. ‘양생론’이 유가 성리학적 ‘수양론’의 맥락에서 논의된다는 것은 그것이 ‘도덕함양’의 수양론으로 전변되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율곡이 생각하는 참된 ‘양생’이란 ‘진실한 덕을 기르는 일’이나 또는 ‘지극한 덕을 구현하는 것’으로서 이해된다. 그리고 양생의 범주는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고 기르는 차원으로부터 ‘하늘을 섬기는 일’에까지 미친다. 그 범주가 인간의 세계에만 머무르지 않고 전우주적인 차원으로까지 확장되는 것이다. 이러한 면에서 ‘양생’은 일종의 소통력이다. 이러한 소통력을 정치현실에 적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율곡의 생각이다. 이에 율곡은 ‘양생’의 맥락을 정치철학적 원리로 수용하면서 특히 군왕의 마음가짐과 통치의 이념으로 제시한다. 군주의 양생은 ‘무위정치’의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양생론’적 접근은 조선조 유학사에 있어서 매우 특기할 만한 의의가 있다. 대부분 ‘양생론’의 범주를 도외시하고 배척하던 시대적 상황에서조차 율곡은 ‘양생론’의 범주를 용인할 뿐만 아니라 이를 하나의 철학적 담론의 영역 안에서 적극적으로 논의하였던 것이다. 율곡은 조선 성리학의 전개과정에 있어서 ‘정치철학적 양생론’의 범주를 최초로 제시한 의의가 있다. 그것은 잘못될 수 있는 정치를 사전에 방지한다는 예방적 효과가 있다. 이러한 전통은 율곡 사후에 ꡔ노자ꡕ를 주석했던 박세당, 서명응, 이충익, 홍석주 등에 전승되어 하나의 전통이 된다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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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