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 this paper is dealt with a problem, ‘is it possible, what in this world say man about God and then can make a correct statement?’, of course not in faithful way, but in philosophical. As the basis we may think above all the concept “similitudo”(likeness) as follows: The first, “nihil itaque alienum a nostro instituto facimus”(we can never do it, which is for us only fremd)(de beryllo c.10). the secound, “cur caelum caelum et terra terra et homo homo, nulla est ratio nisi quia sic voluit, qui fecit”(why the heaven is heaven and the earth is earth and the human is human? Nothing has its existential reason, if that creatures were not caused from the will of the source)(ibid., c.31). For this aspect, we can look at once into Nicholas’ de beryllo, which he wrote in 1458. Just this work aims to thinking about God philosophically, if he said: beryllus is white and transparent stone, “per ipsum videns attingit prius invisibile”, repeatedly ‘through it man can finally look at something, which before has not seen and cognized’. And he proposed, we can apply this visible and physical medium to the invisible and intellectual dimension. If, therefor, we begin through a beryllus(=magnifying glass) on seeing something, which we before have not seen and cognized, then it make us reconsider, that nothing is not nothing, but it's covered only with our ordinary, sensitive and to the material world inclined eyes. So then we will gather ourselves up and see everything newly with our intellectual eyes, which we have accepted already from the Creator. Owing to a likeness of the intellect to that of God we may understand in everything the source of being and knowledge, in other words, God self as "indivisibile omnium principium"(ibid, c.3). If that happens, it may be no trouble, to understand all opposites and the contradictions on ea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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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神에 대해 말해낸다는 것이 그리고 제대로 말해내는 것이 가능할까?’ 이 물음에 대해 본 논문은 理性的으로 해명하고자 애썼던 중세(말기)의 신학자이자 철학자 니콜라우스(Nicolaus Cusanus 1401-1464)의 입장을 그의 작품 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그 같은 노력은 비록 신앙으로 받아들여진 것 역시 모름지기 우리가 ‘알아듣는 만큼’ 받아들여진 것이라는 생각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과연 신앙과 관련된 것을 이성적으로 얼마나 설명해낼 수 있을까? 한편에선 절대자 체험에 대한 檢證이 불가능하다고 力說한다. 그러나 이미 그런 형식으로 제한될 수 없는 神이라면, 神에 대한 체험은 여전히 그와 같은 수단 및 척도로 否認되지 않는다. 다른 한편 그런 체험은 오래 전부터 이루어져 왔으며 또한 인간의 理解를 거부하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아무리 초월적인 신과의 만남이라 하더라도 신을 만나는 당사자가 인간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이해능력과 무관하지 않고, 따라서 그 해명가능성을 열어두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일찌감치 삼라만상이 神의 창조물이라는 신앙에 대한 철학적 통찰은 (세상)초월적이자 무한한 존재로서의 神을 (세상)내재적이자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어떻게든 알아보고 또 말해낼 수 있음을 지지한다. 곧 ‘창조주(神)와 창조물 사이의 관계’가 그 같은 체험을 보증해준다는 것이다. 니콜라우스는 이를 “닮음(similitudo)”이란 개념을 따라 해명하고자 한다. 물론 그는 신학자이자 주교였기에 神의 啓示로서 성서적 증언을 기억하지만, 그럼에도 동시에 과거 철학자들의 논증과 사상을 최대한 반추하여 이성적으로 神-인식의 가능성을 밝히는 데 남다른 노력을 기울인다. 여기 beryllus는 일종의 ‘확대경’이다. 그것은 우리가 그 동안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것을 마침내 알아보도록 도와준다. 그 동안 볼 수 없었던 까닭에 무시되거나 부인되었던 사실들을 마침내 확대경의 도움으로 재고할 수 있게 되었음을 열어 보인다. 니콜라우스는 그로써 대립적인 것들 및 모순적인 것들이 ‘하나’일 수 있음을 보여주었기에 인간의 인식활동에 새로운 전망을 밝혔다고 볼 수 있다. 혹시 우리의 인식행위가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인식능력 자체가 초라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초라하게 만들었던 데에 탓이 있는지도 모른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기 2. 풀어보기: 에서 神에게로 나아가는 철학적 사유의 길 가. 의 저술동기 나. 의 주요 논점(개요): 총 38장으로 구성 다. 요점: “닮음”에 대한 니콜라우스의 이해 ― 그의 다른 작품들과의 함께 3. 맺어보기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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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