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er geht es um die Auffassung des Aristoteles von Technik. Er unterscheidet die Technik von der Natur. Während die letzte das gestaltende Prinzip in sich erhält, hat es die erste außerhalb von ihrer. Aber dieser Unterschied wird durch ihre Strukturgleichheit modifiert: die Natur ist keineswegs blind notwendig oder zufälling, sondern teleologisch, und die Technik ahmt sie nach. Daher wird das Künstliche ― nicht von der Natur, sondern ― von dem Techniker gemäß dem Ziel, which die Natur setzten würde, ‘naturgemäß’ gemacht. Darum ist es keine aristotelische Auffassung, dass “das Natürliche im Künstlichen nicht sich bewahren und steigern, sondern sich brechen und transformieren ließ”; die menschliche Welt ist kein Produk der frei schwebenden Phantasie, sondern für den Naturbezug zu charakterisieren. Das Sich-Nähern von der Natur und der Technik beruht sich in dem aristotelischen System auf der Habitualisierung im technischen Prozeß: je mehr wird die Kunst verfestigt, desto herrscht keine Kontingenz, sondern eine Art Notwendigkeit im Machen. Der gestatende Prozeß der Natur und der der Technik sind also sehr ähnlich. Aristoteles unterscheidet die Technik von anderen Hauptypen der menschlichen Tätigkeit, nämlich Wissenschaft oder Praxis. Die Wissenschaft hat als Gegenstand das, was ontologisch verschieden von dem der Technik ist, d.h. das Unveränderliche. Dagegen geht es bei der Technik wie bei der Praxis um die Kulturwelt, die veränderlich ist. Diese sind ihrerseits im Gesichtspunkt des Wertes der Tätigkeit unterschiedlich. Aus einem bestimmten Gesichtspunkt ist die ganze Tätigkeit der Technik als etwas, was nicht an und für sich selbst wertvoll ist, sondern nur für die Praxis, nämlich die ethische Handlung und die politische eine notwendige Voraussetzung ist, zu kennzeichnen. Das heisst dass die Technik zur Sphäre der ‘Notwendigkeit’ gehört, und dass sie also für die des ‘Guten’, das Ethische und das Politische besteht. Deswegen bedeutet ihre zu hohe Entwicklung für Aristoteles kein Progreß, sondern bloß eine Verwirrung; der grenzlose Reichtum und Konsum kann die Glückseligkeit und das gute Leben stören.
한국어
이 글은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술관에 대한 고찰이다. 그는 기술을 자연과 구분한다. 그 형성원인을 자연은 그 자체 내에 가지고 있는 데에 반해서 기술은 외부에 있다. 그러나 이 구분은 이둘 사이의 구조적, 목적론적 동일성 때문에 약화되고 만다. 자연은 기계적 필연성이나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목적론적 구조를 지닌다. 그리고 기술은 이러한 자연의 모방이다. 그러므로 인공물이란 기술이 비록 자연이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물인 질료에 자연이 지닐 법한 목적에 따라 자연이 부과할 것 같은 형상을 부과해서 생겨난 것이다. 그래서 기술은 자연의 변형이나 파괴나 더더욱 지배는 아니다; 인공적 세계는 자유로운 상상력의 산물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방향성과 제약을 지닌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이렇게 기술과 자연을 근접시킬 수 있었던 근거는 숙련된 기술자의 작업과정 속에서 보이는 체득화(Habitualisierung)이다. 기술이 숙련될수록 심사숙고나 우발성 대신에 필연성이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술이 하는 것이나 자연이 하는 것은 대단히 유사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기술을 인간행위의 다른 주요 형태인 과학이나 ‘실천(Praxis)’으로부터 구분한다. 과학은 기술과는 존재론적으로 다른 대상, 즉 불변하는 자연에 대해서 탐구한다. 그에 반하여 실천과 마찬가지로 기술은 가변적인 문화의 세계를 대상으로 한다. 그렇지만 그 가치에 있어서 차이가 난다. 어떤 의미에서 기술활동 전체는 그 자체로 가치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활동, 즉 윤리적 활동이나 정치적 활동이 가능하도록 만들어 주는 필수조건에 불과하다. 즉 기술은 ‘필연’이고 ‘필연’은 정치나 윤리 같은 ‘좋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자면 기술이나 생산력이 한계를 넘어서 지나치게 발전하는 것은 진보라고 하기보다는 일종의 혼란이다; 물질적 풍요가 오히려 행복이나 제대로 된 삶을 교란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 개념 3. 자연 대 기술 3.1 자연과 기술의 차이 ― 원인의 내재(內在)와 외재(外在) 3.2 자연과 기술의 동일 ― 목적론적 구조 3.3 기술은 자연의 모방 1 4. 기술과 실천지 그리고 사변지 5. 기술에 대한 가치평가 5.1 기술은 자연의 모방 2 5.2 필연과 좋음의 구분 6. 결론적 논평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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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