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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자의 인성론에 대한 한 해석
An Interpretation on Xunzi's Theory of Human Na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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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KCI 등재 바로가기
  • 통권
    제29집 (2005.03)바로가기
  • 페이지
    pp.1-24
  • 저자
    김성동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9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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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정보

초록

영어
This thesis is the defense of Xunzi's theory that human nature is evil. Nowadays his theory is often interpreted as one that human nature is value-neutral, which is contrary to Xunzi's manifest declamation. This kind of interpretation seem to be resulted from the different perspective from Xunzi's on the evil of human nature. While Xunzi means the evil in the social situation with the expression 'evil', the interpreters have in mind the evil in the individual or general situation with it.
What Xunzi means with the clause that human nature is evil is the fact that the negative effect happen when human follows the desire of his nature in the social situation. Xunzi point out these negative effects as the disharmony between desire and resource, and the disorder which is accompanied by such disharmony. According to Xunzi's theory that human nature is evil, humans nature is negative to the harmony between desires and resource and leads to the disorder.
The interpretations which regard Xunzi's theory as value-neutral are not consistent with Xunzi's original intention, because those impose the responsibility for the disorder on the shortage of the resource, not on the human desire. Those could be preferred by the contemporary atmosphere which regards the human nature as what should be realized, not as modified. However, Xunzi refuses this understanding on human nature. He wants to impose the responsibility for poverty and disorder, not on the nature but on the human, because he believes man can be liberated from poverty and disorder by the change of his nature through learning the regulative rules. Today, we hardly discover the similar attitude to Xunzi except the Amish in North America.
Xunzi's premise that the human nature is evil draws his conclusion that the human nature should be changed with the regulative rules. Xunzi himself anticipate such a question how human can have the regulative rules which originally does not exist in human nature. Xunzi explain it out by the reference of the enlightened self-interest which is repeated by Thomas Hobbes. The interpreters who doubt about the coherence of Xunzi's theory criticize that this explanation is not sufficient. According to anthropological explanation, however, human nature is not invariant, but given as incomplete and later completed by cultural socialization. Naturalism which emphasizes the given human nature and its criticism against the culturalism is not just according to the anthropological knowledge.
Xunzi's theory on human nature factually shows the limitations of his times and of the negligence of the aspect of good human nature. However the significance of his theory for us is the recalling the fact that the human virtue given through the indoctrination changes the animal being into the human being and could be the more essential part of human nature in that sense.
한국어
이 글은 성악설로서의 순자의 인성론에 대한 옹호이다. 오늘날 때로 순자의 인성론은 그의 명시적 표명과 달리 성중립설로 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순자가 말하는 악을 순자가 의미하는 사회적 악이 아니라 개인적 악이나 일반적 악으로 해석함으로써 생겨난다. 순자가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고 말할 때, 그가 의미하는 것은 사회적 삶에서 본성적인 욕망을 따르면 악한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순자는 특히 이러한 악한 결과를 욕망과 재물의 부조화와 그로 인한 무질서로 파악했다. 그러므로 순자의 성악설은 사람의 본성이 욕망과 재물의 조화에 부정적이며 결과적으로 무질서를 가져온다는 주장이다.
순자의 인성론을 성중립설로 해석하는 것은 순자의 본의에 어긋나는 일이 되는데, 왜냐하면 이럴 경우, 무질서의 일차적인 책임이 인간의 욕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재물이 부족한 데에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성을 교화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실현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오늘날의 사유방식에서 이러한 해석은 선호될 수 있지만, 순자의 취지는 바로 이러한 입장을 거부한다. 순자는 빈곤과 무질서의 책임이 자연이 아니라 인간에게 있으며, 따라서 인간을 예의 를 통하여 교화시킴으로써 빈곤과 무질서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오늘날 이러한 성악설적인 태도는 미국의 아미쉬 사람들을 제외하곤 찾아보기 어렵다.
순자의 성악설이라는 전제는 예의를 통한 본성의 변화라는 결론을 갖는다. 본성에 없는 예의를 어떻게 인간이 가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순자 자신이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질문이었다.
순자는 나중에 홉스에 의해 전개된 것과 같은 계몽된 자기이익에 의해서 인간이 본성과 배치되는 예의를 갖게 된다고 설명한다. 순자의 인성론의 정합성을 의심하는 연구자들은 이러한 설명이 충분하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철학적 인간학에 따르면 인간의 본성은 불변적인 것이아니라 미완성적인 상태로 주어지며 문화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만을 강조하는 자연주의와 이러한 자연주의에 의거한 문화주의에 대한 반론은 인간학적 지식에 따르면 적절한 것이 아니다.
순자의 인성론은 사실 시대적 한계성과 함께 인성의 성선설적인 측면을 간과한 점 등의 한계성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간의 자연적 본성에 덕성이 갖추어짐으로써 비로소 동물적인 인간이 인간다운 인간이 된다는 점, 그리고 이러한 덕성이 본성보다 오히려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측면이라는 점을 상기시켜 준다는 점에서 그 현대적인 의의를 갖는다.

목차

요약문
 1. 순자와 현대
 2. 인간의 본성은 가치중립적인가?
 3. 순자는 왜 인간의 본성이 악하다고 주장하는가?
 4. 성중립설의 관점
 5. 성악설의 관점
 6. 예의는 계발되는 것인가 개발되는 것인가?
 7. 선하고자 하는 의지
 8. 제2의 본성으로서의 예의
 9. 순자 인성론의 현대적 의의
 10. 순자의 인성론의 한계들
 참고문헌
 Abstract

저자

  • 김성동 [ Kim, Sung-Dong | 호서대학교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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