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krates hat keine neuen gesellschaftlichen Systeme als Ersatz der alten dargeboten. Trotzdem ist er meiner Meinung nach weder reaktionä noch konservativ, sondern progressiv. Meine Behauptung stüzt sich auf die Struktur seiner Widerlegung. In seiner Zeit haben die Tugenden, die als Ideal einmal die Gesellschaft geleitet haben, ihre Macht verloren und sogar als Ideologie fungiert. Er hat aber nicht die veralteten Tugenden aufgeben und sie durch die neuen ersetzen; eher wollte er sie von dem ideologischen Charakter reinigen und sie verteidigenswert machen. Er hat die alten Tugendbegriffe wegen ihrer Ungütigkeit und der Unzulälichkeit kritisiert. Aber seine Arbeit geht üer ihre bloße Kritik hinaus; wenngleich es zu einer positiven Beantwortung nicht kommt, fehlen Ansäze zur richtigen Löung nicht. Sokrates fragt nach einer bestimmten Tugend und widerlegt falsche Begriffsbestimmungen. Oft beginnt der sokratische Elenchos mit der Feststellung, daß jede Tugend wirklich gut sein muß, und zeigt daß die ideologisierte Tugend nicht so sein kann. Fü den Ringkäpfer z.B. könen 'Bedähtigkeit und Langsamkeit` gar nicht gut sein, und daher kann die traditionalen Auffassung der Besonnenheit als 'Bedähtigkeit und Langsamkeit` unmölich stimmen. Durch solche merkwüdige Widerlegung konnte Sokrates zeigen, daß sich die gewönlich als selbstverstädlich hingenommene Auffassung unter einer anderen Situation als ein Irrtum erweist. Außerdem benutzt er den Analogieschluß, um das richtige Prinzip fü die Ethik zu finden. In der Wirklichkeit dient die sogenannte Gerechtigkeit dem Nutzen der Herrschenden. Das kritisiert Sokrates durch den Analogieschluß der Gerechtigkeit mit der Kunst; jede Kunst ist fü ihren Gegenstand nüzlich, analog soll die Gerechtigkeit auch ihren Gegenstand födern. Auf diese Weise hat Sokrates die veralteten und ideologisierten Tugendbegriffe reinigt und wieder zum wirklichen Ideal zu machen versu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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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가 새로운 체계를 제시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한 작업이 보수적 반동적인 것이 아니라 개혁적이었다고 여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그의 ‘논박’에 있다. 그의 시대에 한 때는 사회를 이끌어 나가던, 이상적 규범들이었던 ‘덕’들이 더 이상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적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적인 기능을 하게 되었다. 그는 이러한 ‘덕’들을 그냥 폐기처분하고 새로운 정치체제와 새로운 이상들을 제시한 것이 아니다. 그가 일차적으로 한 작업은 그것들이 부적절함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단지 소극적으로 비판에 그치고 만 것은 아니다. 비록 새로운 대안을 직접적으로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대안으로 나아 갈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대화상대방에게 특정한 덕에 대해서 그것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고 그의 답변을 논박한다. 그 논박의 과정은 덕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참으로 ‘좋아야’ 한다는 점을 우선 환기시키고 나서, 이데올로기화한 전통적인 덕들이 과연 좋을 수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 못하다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운 실례를 든다. 예컨대 절제란 은인자중 하면서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라는 귀족적인 견해에 대해서 만약에 격투하는 마당에 천천히 행동하는 것이 좋으냐고 반문한다. 이것이 좋지 못하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러므로 이 절제관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데올로기적으로 변한 덕들의 허구를 보여주기 위해서 토론자들을 일상적인 콘텍스트를 떠난 상황에다 몰아 넣어서 이래도 좋으냐고 묻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에는 기술과의 유비를 통해서 제대로 된 덕이 갖추어야 할 원리를 제시하고 전통적인 덕개념이 이 원리에 맞지 못함을 보여 준다. 예컨대 정의가 일상적으로는 지배계급의 이해타산을 반영하기 때문에 피지배계급의 불이익이고 그 때문에 불의를 행해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 대해서 기술의 예로부터 유비추론하여 논박한다. 기술이란 기술자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대상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는 것임을 보여준다. 그에 상응하자면 정의도 정의의 기술자인 정치가의 이익이 아니라, 시민의 이익을 도모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통적인 덕개념들을 정화시켜 나갔던 것이다.
목차
요약문 1. 서론 2. 지나가 버린 규범으로서의 덕 개념 3. 이데올로기화한 덕 개념 4. 논리적인 모순을 밝혀 내는 것 이상(以上)인소크라테스의 e)/legxoj 5. 타당성을 상실해 버린 덕 개념을 정화(淨化)하려는 논박 6. 논박(e)/legxoj)의 도구 6.1 예시의 독창성 6.2 기술과의 유비 6.3 ‘목적합리성(Zweckrationalität)’를 넘어서기 7. 결론 참고문헌 Zusammenfassung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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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