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ohn Rawls' analysis of classical utilitarianism in A Theory of Justice(1971) pertains to the question of how utilitarianism's teleological character, i.e., its defining what is right as that which maximizes the good, leads to indifference to distributive concerns. In utilitarianism as a teleological theory of ethics, the good is defined independently from the right or independent of any moral concepts and principles. In contrast to this, Rawls claims, a deontological theory is defined as "one that either does not specify the good independently from the right, or does not interpret the right as maximizing the good"(Rawls 1999 [1971], p. 26). This distinction has been widely accepted for a while without serious challenges. Recently Will Kymlicka has argued that Rawls' characterization of utilitarianism as a teleological theory of ethics is seriously mistaken; that it depends on an artificial reconstruction of utilitarianism. His substantial claim is that utilitarianism is one way of spelling out the notion of equal regard for persons, and thus that it is as deontological as any other non-utilitarian theories. According to his interpretation, utilitarianism embodies the fundamental principle of treating people as equals by giving equal weight to each person's preferences, regardless of what they are preferences for. The principle of equality thus embodied provides a utilitarian basis for a fair social decision procedure. On this interpretation, maximization of utility is not the direct goal but "a by-product of a decision procedure that is intended to aggregate people's preferences fairly"(Kymlicka 1989, p. 25). In this paper I shall argue, against Kymlicka's interpretation, that utilitarianism is teleological in principle; that it is utterly pointless to deny that it is a goal-based theory at the substantive level. Maximization is not a by-product but a basic policy adopted to decide when one's sacrifice for another is justified. Utilitarianism does specify a notion of equality as impartiality at the fundamental level, as expressed in Bentham's dictum. However, commitment to equal regard at this fundamental level is not what distinguishes moral conceptions. What differentiate moral conceptions from one another are their moral principles at the substantive level which can actually tell us what we ought to do or what it is right for us to do. But Kymlicka misunderstands at which level Rawls' teleological/deontological distinction is supposed to work. It is supposed to work at the substantive level, not at the fundamental level of a moral conception. Kymlicka claims that all modern moral theorists accept that equal concern and respect is the fundamental moral principle. In a way, this claim expresses a truth. But it oversimplifies the matters involved, and contains serious misunderstandings about both Rawls and modern utilitaria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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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리주의는 좋음(선)을 옳음과 관계없이 설정하고 옳음을 좋음(선)의 극대화로 규정한다는 롤즈의 분석은 철학자들 사이에서 일반화된 분석이며, 공리주의자들조차 특별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신의 기본적인 정치윤리적 입장은 반공리주의적임에도 불구하고, 킴리카는 이러한 롤즈의 분석을 공리주의의 제일원칙에 대한 심각한 오해로 단정한다. 롤즈의 공리주의 비판의 핵심은 공리주의의 분배적 평등에 대한 무신경이다; 그리고 이러한 무신경은 그것의 목적론적 본성에 기인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하여 킴리카는 유력한 공리주의의 형태는 평등주의적이며, ‘옳음의 우선성’(the priority of right)에 기초하는 일종의 의무론으로 간주할 수 있다는 견해를 제안한다. 더 나아가서 그는 공리주의를 비롯한 모든 온전한 도덕론은 ‘평등주의적 지평’(egalitarian plateau)에서 출발한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공리주의의 제일원칙은 극대화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하나로 고려하며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고려하지 않는다’는 벤담의 원칙이다. 공리의 극대화는 벤담의 원칙을 준수하여 모든 개인의 선호에 평등한 무게를 부여하려는 절차의 ‘부산물’(by-product)일 뿐이다. 더불어 킴리카는 평등주의적 공리주의는 개인내적 교환구조를 개인간의 교환구조로 전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킴리카의 주장들을 정면으로 부정할 것이다. 첫째, 극대화는 단순히 벤담의 원칙을 준수하는 평등주의적 절차의 부산물이 아니라, 옳은 행위에 대한 실질적인 공리주의적 기준이다. 둘째, 롤즈를 비롯한 자유주의적 권리론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공리주의는 개인내적 교환구조를 개인간의 교환구조로 전용한다. 극대화는 양자의 교환구조를 지배하는 제일원칙이다. 셋째, 공리주의에서 극대화 원칙과 벤담의 원칙은 불가분 하다. 이 마지막 주장은 킴리카와 롤즈의 논쟁이 가진 한계들을 지적하며, 공리주의적 평등 개념을 설명한다. 극대화 원칙은 롤즈가 주장하는 것처럼 순전히 집합적인 원칙이 아니며, 킴리카가 주장하는 것처럼 평등한 존중의 원칙과 분리대립되는 원칙도 아니다.
목차
요약문 1. 들어가는 말 2. 목적론적 공리주의 3. 평등주의적 공리주의 4. 롤즈는 공리주의의 두 해석들을 혼동하였는가? 5. 평등 개념의 단계와 역할 6. 현대 공리주의의 전략에 대한 킴리카의 오해 7. 나오는 말 참고문헌 Abstract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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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