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ticle

현재 위치 Home

의사소통적 합리성 대 예술 : 하버마스에게서 미학이론을 기대할 수 있는가
Communicative Rationality versus Art

첫 페이지 보기
  • 발행기관
    대동철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대동철학 바로가기
  • 통권
    제3집 (1999.03)바로가기
  • 페이지
    pp.215-244
  • 저자
    이성훈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8998

※ 기관로그인 시 무료 이용이 가능합니다.

7,000원

원문정보

초록

영어
I
With the publication of Der Philosophische Diskurs der Moderne(1985), Habermas abandons the terrain of philosophical aesthetics in the sense that, for him art no longer represents a privileged object of philosophical discourse. Philosophy is no longer responsible for the interpretation of the work of art or for the integration of the work of art into society, as Habermas implicitly delegates this task to art criticism.
This attitude appears to be a reversal of Habermas's earlier position. We will attempt to explain why Habermas's efforts in the field of aesthetics ultimately led him to such a negative account of art. We will seek the cause of his disappointment in the heart of his critical theory of society. In short, Habermas's theory of communication prevents him from appreciating the specificity of the aesthetic phenomenon.
II
Having adopted the Weberian diagnosis of the rationalization processes(the increasing specialization of the three spheres: science and techonology; universalistic morality and positive law; and autonomous art and art criticism and the ruptures in the continuity between these cultural spheres and daily life), Habermas sees the paradox of rationality as the greatest challenge now facing philosophy. The challenge must be met because the project of modernity is an unfinished project so long as the gap between culture and the lived world remains to be filled.
It is from this perspective that we must grasp the intervention of the theory of communication in Habermas's work. Our modern societies are characterized by this rupture; there are breakdowns in the communication among the cultural spheres, between society and culture, and this is due to the specificity of the inner logic of each. The imperative of communication is so determinative for Habermas that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founded in the formal pragmatics of language dictates the entire architectonic of his cultural system. In this way, science, morality, and art are divided according to the three validity claims that are reunited in every speech act: the claim to truth, the claim to normative rightness, and the claim to authenticity.
III
The preceding overview is essential for an understanding of the status that Habermas accord philosophical discourse concerning art. Here aesthetics takes its place within a theory of modernity, more precisely, within a theory of modern rationality. The inclusion of art in a theory of modern rationality is also explained in the following way: to the extent that an argument is possible and even legitimate in this case, art harbors a cognitive potential. Art implies a certain type of knowledge and for this reason is of philosophical interest. Thus, in the early 1980s, Habermas's project in the aesthetic domain parallels his agenda in the reals of science and ethics, for he claims, particularly in the Theory of Communicative Action, to be able to identify the conditions necessary for the production of aesthetic knowledge by showing that aesthetic experience is intimately related to the intuitive mastery of a system of rules. Above mentioned, the arguments which are put forth in a discussion of a work of art gravitate toward a validity claim presented in terms of authenticity. That is to say, the intrinsic quality of a work of art depends on the degree to which the artist's expression in the work of art is authentic.
IV
But shortly thereafter Albrecht Wellmer has warned that the categories of truth and authenticity are inadequate for the task of discerning the cognitive specificity of the work of art. Habermas became sympathetic to Wellmer's view that the claim to authenticity is too restrictive. What are the causes of Habermas's first error?
We can say that the requirement of authenticity originates in the theory of communication. The pragmatics of language here determines a priori if not the content of art, at least the standard of measure by which it will be judged. It follows then that the primacy of communication interfere here with the inner logic of art. Habermas formally maintains his respect for the autonomy of art but, in fact, he subjects art to the logic of communication. Because he wishes to use communicative reason to resolve, at all costs, the paradox of rationality, he is led to introduce into the aesthetic domain a completely extrinsic standard of measure.
한국어
I
본 연구는 먼저 하버마스의 예술관의 변천과정을 초기 저작들에서부터 살펴본 후, 그가 이른바 합리성의 역설을 해소하기 위해 도입한 의사소통적 합리성이 결국 예술의 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는가를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는 글은 하버마스가 1985년에 펴낸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이다. 여기에서 그는 예술이 더 이상 철학적 담론의 특권적인 대상을 대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철학적 미학의 영토를 암묵적으로 포기한다. 철학은 이제 더 이상 예술작품을 해석하는 것에 대해 혹은 예술작품을 사회 속으로 통합시키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않는다. 하버마스는 이 과제를 암묵적으로 예술비평에게 넘겨준다. 그가 보기에, 이렇게 예술의 문제가 철학에서 예술비평으로 넘겨질 수밖에 없는 것은 예술의 혁신적 잠재력이 철학적 담론을 고분고분 따르기에는 너무나도 예측불가능하고 산발적으로 표명되기 때문이다. 그에 의하면, 예술은 ‘우연성’의 징표를 품고 있다. 따라서 예술은 경험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고 후천적으로만 반성될 수 있으므로, 반성적 힘을 통해 총체적 연관성을 보존하고자 하는 철학의 관할권 밖에 놓일 수밖에 없다. 예술에 대한 이러한 하버마스의 변화된 태도는 그의 초기 입장의 분명한 역전으로 여겨진다.
II
베버가 모더니티의 역설에 사로잡히게 된 것은 합리성 개념을 협소하게 목적합리성으로만 이해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하버마스는 가치합리성을 새로이 일상의 의사소통 속에 위치시키고자 한다.
하버마스가 옳다면, 상호이해에 도달하고자 할 때마다 화자들은 진리, 정당성, 그리고 진실성 혹은 진정성이라고 하는 세 가지의 타당성요구에 관여하게 된다. 게다가, 모든 합리적 대화는 논박의 잠재력에 관여하고 있고, 또한 모든 학문들의 학습과정은 합리적 대화의 이러한 형식적 특징들을 모두 보지하고 있으며, 이 특징들은 그것들대로 규범적 관여를 포함하고 있으므로, 하버마스는 베버에 반대해서 합리적 개인들은 구속받지 않은 민주적 공동체와 같은 것을 내재적으로 지향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버마스가 미적 가치를 표현적 진실성 혹은 진정성의 주장 속에 위치시킨다는 점이다 의사소통 이론에 따르면 진실성의 . , 주장 역시 진리 주장 및 정당성 주장과 함께 상호이해에의 도달을 지향하는 화자들에 의해 묵시적으로 제기된다. 한 화자의 진실성을 가정함에 있어 우리는 그가 암시적으로나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감정들, 욕구들, 그리고 취미들이 그가 실제로 가지고 있는 것들임을 당연시할 뿐만 아니라 이것들이 그가 깊은 반성을 거치고 나서 가지게 된 것임을 당연시하기도 한다. 달리 말해서, 우리는 화자가 우리에게 및 자기자신에게 진실하다는 것, 즉 그가 자신의 진실된 감정, 욕구, 취미에 관해서 자기자신을 속이지 않았다는 것을 전제한다.
III
앞의 조감은 하버마스가 예술에 관한 철학적 담론에 부여하는 지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이다. 여기에서 미학은 모더니티의 이론 속에다가, 더 정확히 말해서 현대적 합리성의 이론 속에다가 자신의 자리를 차지한다. 하버마스가 예술의 문제를 현대적 합리성의 이론 속에 포함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고찰에 따라서이다. 논증, 즉 다양한 동기와 이유를 밝히는 것이 예술의 경우에도 가능하고 심지어 합법적이기까지 하는 한, 예술은 인식적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예술은 어떤 유형의 지식을 함축하고 있으며, 이런 이유로 해서 철학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이에 상응하는 철학적 과제는 바로 그러한 지식의 가능성의 조건들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1980년대 초반에 하버마스의 미학적 기획은 과학과 윤리학의 영역들에서의 의사일정과 나란히 가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특히 ..의사소통 행위 이론..에서, 미적 경험이 ‘규칙체계의 직관적 장악’과 밀접하게 관련을 맺고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미학적 지식의 생산에 필요한 조건들을 확인해 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IV
그러나 하버마스의 예술관의 핵심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모종의 이론적 간섭 때문에 야기되는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타당성주장으로 되돌아가 보자. 예술작품에 관한 논의에서 제기되는 논증은 진정성 혹은 진실성의 이름으로 제시되는 타당성주장 쪽으로 기울어진다. 다시 말해서, 예술작품의 고유한 특질은 그 예술작품내에서 예술의 표현이 얼마나 진실되고 진정한가에 의존한다.
그러나 그 직후에 벨머는 진리와 진정성의 범주들이 예술작품의 인식적 특수성을 구별해 내기에는부적합한 범주라는 견해를 피력하고, 하버마스는 곧 진정성 주장이 너무 제한적이다는 벨머의 이러한 견해에 공감을 표하였다. 우리는 이러한 교정 혹은 양보가 하버마스의 예술관의 변천에 대해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하버마스는 전에는 예술이 주관적 욕구들의 재해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진정성에 대한 화용론적으로 기능적이며 순수하게 표현적인 주장을 제기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믿었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술작품이 화용론적인 의사소통적 기능들에 종속되지 않고 전적으로 경험만 지시하는 순수하게 미적인 주장을 제기한다고 주장한다.
예술에 대한 하버마스의 이러한 시각교정은 그의 심미적-표현적 합리성의 개념에 대해 새로운 문제를 불러일으키게 된다. 원래 이 개념은 화용론적인 표현적 진정성주장과 관련해서 전문화된 하나의 담론의 출현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제 그것은 비합리적으로까지 여겨지지는 않지만 전적으로 다른 이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는 진리주장과 관련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이 주장은 예술작품의 수용, 즉 경험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제기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것은 담론적 방식으로라기보다는 비유적-수사학적으로 구속력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직관적인 합리성 개념을 함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하버마스의 애초의 잘못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진정성의 요구는 다름 아닌 의사소통의 이론에서 비롯되고 그것에 의해 강요된다. 이때 언어 화용론은 예술의 내용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것을 판단할 척도는 아프리오리하게 결정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의사소통의 우위성이 예술의 내적 논리를 간섭하게 될 것이다. 하버마스는 형식적으로는 예술의 자율성에 대한 자신의 존경심을 분명하게 과시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실상은 예술을 의사소통의 논리에 종속시키고 있다. 그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합리성의 역설을 해결하기를 원하고 이를 위해서는 의사소통적 이성의 도입이 불가피하다고 보기 때문에, 미학적 영역 속에다가 완전히 외적인 척도를 도입하게 되었다. 하버마스는 합리성의 역설을 해결하기 위해 의사소통적 합리성을 도입하나, 예술의 입장에서 볼 때는 그것이 타율적인 척도의 강요로 읽힐 여지가 많다는 지적을 받고 난 후 주관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통해 예술의 문제를 의사소통적 합리성의 영역에서 철회시키고자 한다.
우리는 현대적 이성이 한편으로는 전문화와 자율성,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해방과 계몽이라고 하는 두 가지 대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하버마스의 입장에서 후자가 지배적이라고 하는 사실이 그로 하여금 의사소통 이론을 과잉강조하게 만들었고 이것이 전문화된 문화영역들, 즉 전문가들의 문화와의 갈등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하버마스는 과학적 담론과 도덕적 담론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그것들의 가능성 조건들을 분간해 내려는 희망을 견지한다. 그러나 그는 이제 더 이상 이 일이 미학적 비판을 위해서는 행해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가 그 이후 진리와 취미 사이에 설정하는 이분법의 의미이다. 과학과 윤리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접근로이다. 반면에 예술이 스스로를 삶의 세계와의 의사소통 과정 속에서 드러내지 않는 한, 진리의 개념은 비유적 의미로밖에는 예술에 적용될 수 없다. 따라서 예술은 지식의 전진적 축적을 촉진하는 합리적 학습과정에서 벗어나 있다.
이리하여 철학은 이제 예술과 삶의 세계 사이의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는다. 이 중재는 이제 경험적 탐구로 간주되는 예술비평의 과제가 된다. 철학은 전문가들의 문화와 삶의 세계사이의 ‘해석자’ 역할을 맡을 준비를 하고 있을 뿐이다. 하버마스는 ..현대성의 철학적 담론..에서 이러한 입장이 도달할 수밖에 없는 지점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즉 진정성과 같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기준이 부재할 때, 철학은 중재자로서 기능할 수 없다.

목차

요약문
 Ⅰ. 들어가는 글
 Ⅱ. 모더니티의 역설, 미적 합리화, 의사소통적 합리성
 Ⅲ. 의사소통적 합리성과 예술
 Ⅳ. 비판적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키워드

미학 예술 합리성 의사소통적 합리성 현대성 아방가르드

저자

  • 이성훈 [ Lee, Sung Huhn | 경성대학교 인문학부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대동철학회 [The Daedong Philosophical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철학
  • 소개
    오늘날 우리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국내외적인 많은 어려움 속에서 한국의 철학계가 이제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근본적으로 다시 생각해 보고 새로운 방향을 추구해 나아가야만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들이 더욱 높아져 가고 있습니다. 되돌아 보건대 지난 수십년간 우리 철학인들의 노력으로 많은 발전이 이어져 오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한국의 철학계는 일제가 남기고 간 뿌리 깊은 구조적 왜곡의 도식적 틀로 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가 하면,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근래에 진행되고 있는 철학 활동들의 상당한 부분이 외국 철학계의 축소판적 모방 내지는 반복에 그침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현실성에 대하여 역행까지 하고 있다는 사실들이 심각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습니다. 철학은 분명 시대와 사회의 현실적 토양에 뿌리를 둔 자생적이고 종합적인 지적 노력들의 결집장인 것입니다. 이제 한국의 철학계는 지난 날의 왜곡된 도식적 틀과, 주체성을 상실한 타성적 모방을 면밀한 비판적 반성과 함께 철저히 극복하여야 하며 새로운 시야와 태도를 가지고 우리들 현실의 심층부에 놓여 있는 문제들에 가까이 다가가야만 합니다. 진정 우리의 철학계는 근본적인 질적 전환의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철학사를 되돌아볼 때, 철학은 어렵고 복잡한 시대적 전환기의 상황에 놓여질수록 더욱더 그 진가를 발휘하여 그 사회의 내면에 은폐되어 있는 총체적 구조 연관의 모습들을 드러내어 밝혀 주고 새로 운 이념과 비젼을 제시함으로써 더 진일보한 인간 실현의 공동체 형성에 기여해 왔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한국의 현실 상황은 어려운 문제들이 구조적으로 복잡하게 얽혀 있는 난해한 장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철학의 탄생을 예고하는 풍부한 다양성의 토양인 것입니다. 이 새로운 철학적 종합은, 현재 우리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다양성의 토양이 아직 성숙한 문화적 종합을 이루지 못한 채 그저 혼재된 상태에 놓여져 있음으로 인해 더욱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의 대학과 사회는 외양상으로는 풍부함에 넘치고 있고, 또 전반적인 사회 발전의 수준이 이미 산업사회의 단계를 넘어 첨단 과학 기술 정보사회에 진입하고 있다고 말해지고 있지만, 그 내면의 문화 적이고 사회적인 과정들은 어느 틈엔가 자각하기 힘들 정도로 기술적 효율성과 자본의 논리라는 획일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지배당하는 일차원적인 단순성의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는 이러한 일차원적인 경향에 밀려 비인간화의 황폐한 지대로 내몰리고 있는 것입니 다. 대학에서조차 철학은 잊혀져 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심각한 상황 때문에 철학은 자기 인식의 눈을 다시 떠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오늘날 이 사회에서 어떠한 획일적 논리가 막후에서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가, 그 논리는 각 분야에서 어떠한 지식의 형태로 또 어떠한 문화의 방식으로 보이지 않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공개된 담론의 무대에 올려 논의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은 망각되고 왜곡된 우리들 존재의 본질을 다시 일깨우는 일이며, 또한 진정한 자유로운 인간 공동체의 문 화 형성에로 나아가는 길의 시작일 것입니다. 미래의 우리의 철학은 역사적 맥락 속에서 현실 상황의 내면적 구조 연관의 변화하는 역동적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어 밝혀 주고 우리들 삶의 본질을 지켜 줌으로써 인간 공동체의 실현을 위한 교육적 문화 적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철학의 과정은 우리의 철학인들 모두가 현실의 문제 의식에 공감하 고 서로의 학식과 구상들을 대화하며 뜻을 함께 모으는 가운데 서서히 결실을 맺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의 이러한 대화와 논의의 과정이 본래부터 국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것은 오늘날 모든 국가들의 사회 생활이 국제적인 상호 교류와 영향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의 한국 사회는 동서양의 문화적 교차 지점에서 매우 복잡한 다양성의 현실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위시한 세계 여러 나라의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철학은 동서양의 수많은 철학 이론 들이 함께 참여하여 토론하는 집단적인 노력을 통하여 탄생할 것이며, 본 大同哲學會는 그것을 위한 대화의 중심 무대가 될 것입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대동철학 [Journal of the Daedong(Graet Unity) Philosophical Assocition]
  • 간기
    계간
  • pISSN
    1229-0750
  • 수록기간
    1998~2026
  • 등재여부
    KCI 등재
  • 십진분류
    KDC 105 DDC 105

이 권호 내 다른 논문 / 대동철학 제3집

    피인용수 : 0(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함께 이용한 논문 이 논문을 다운로드한 분들이 이용한 다른 논문입니다.

      페이지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