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과 망각의 서사로서의 만주 배경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 읽기 - 『최척전(崔陟傳)』ㆍ『강로전(姜虜傳)』ㆍ『김영철전(金英哲傳)』을 중심으로-
A Reading of Historical Novel Against Manchuria as a Description of the Memory and Oblivion in the 17th Century:focused on Choicheok-Jeon[崔陟傳]ㆍGangno-Jeon[姜虜傳]ㆍKimyoungcheol-Jeon[金英哲傳]
17세기 초 만주 일대에서 후금과 명,그리고 조선이 군사적으로 충돌했 다.이때 강홍립의 군대가 명나라 군을 지원하기 위해 출정했다가 후금에 투항한 소위 ‘심하(沈河)의 원정’이 일어났다.동아시아 국제정세의 변화 속 에서 백성들은 전란의 고통과 이산의 슬픔을 처절히 맛보았고,그러한 체험 담이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 작품에 고스란히 투영되어 나타났다.그 대표적인 작품이 「최척전(崔陟傳)」․「강로전(姜虜傳)」․「김영철전(金英哲傳)」 등이다.본고에서는 이 세 작품에 담긴 전란 서사 속 고통과 분노의 시선을 의도성 문제로 접근해 보고자 했다. 이를 위해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에 나타난 기억과 망각의 존재양상 을 크게 네 가지로 나눠 살펴보았다.즉,(가)서사에서 의도적으로 기억해낸 역사(체험담/이념적 변형),(나)서사에서 의도적으로 망각시킨 역사(시 대․사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다)서사에서 의도하지 않았지만 기억된 역 사(리얼리티 획득을 통한 자료의 간접적 복원),(라)서사에서 의도하지 않았 지만 망각된 역사(상상․서사적 독법이 요구되는 사건․사실)등으로 대별 해 작품에 투영한 서사의 진실 문제를 다루고자 했다.이 중 의도하지 않았 지만 기억되거나(다)망각된(라)역사와 리얼리티는 작품의 새로운 의미와 가치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새로운 독법을 요한다고 보았다.그리고 서사 속 의도된 기억과 망각의 주체는 개인적,또는 집단적일 수 있지만,비의도 적 요소는 작가의 영역을 벗어난 것으로 독자의 소관이라 보았다.이는 분 명 역사가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고 재구성하는 시각과는 다른 접근 방식 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후대에 특정 사회가,작가와 독자가,그 전란을 기억해 내고 싶어하거나 망각하고 싶어하는 방향으로 역사적 인물과 사건의 의미와 이미지를 결정 짓고 그것에 따라 서사라는 겉모습을 만들어 내면,그것이 결국 하나의 실 체요 진실인 양 바뀌기 쉽다.이러한 사고(의식)의 균열 지점이 이전과 현저 히 다르게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 바로 17세기였고,특별히 명․청 교체기에 만주를 중심으로 한 ‘심하의 원정’과 포로 생활기를 다룬 전쟁 소재 역사소 설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보았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에 나타난 기억과 망각 3.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에 나타난기억과 망각의 존재 양상 4. 17세기 전쟁 소재 역사소설에 나타난 비의도적 기억과 망각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