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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역사와 문학 속의 만보산 사건 - 80주년에 즈음하여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변형, 리후이잉의『萬寶山』읽기
历史的事实与文学的真实, 李辉英的≪万宝山≫读法
역사적 사실과 문학적 변형, 리후이잉의『만보산』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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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발행기관
    만주학회 바로가기
  • 간행물
    만주연구 바로가기
  • 통권
    제11집 (2011.06)바로가기
  • 페이지
    pp.71-84
  • 저자
    김창호
  • 언어
    한국어(KOR)
  • URL
    https://www.earticle.net/Article/A145450

※ 원문제공기관과의 협약기간이 종료되어 열람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원문정보

초록

한국어
이 글은 중국 작가 리후이잉의 ≪만보산≫을 통하여 역사적 사실과 문학 적 진실의 관계를 조명하는데 목적이 있다.소설 ≪만보산≫은 1931년 여름 한중농민이 장춘 근교의 만보산 일대에서 수전개발과 관련하여 충돌한 사 건을 형상화한 작품이다.그러나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한 이 작품은 실제 사건과 달리 일제와 기층 권력에 맞서는 한중농민의 연대라는 문학적 변형 을 가지고 있다.이러한 변형의 가장 큰 원인은 그의 등단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길림 출신인 작가는 중학교 졸업이후 상하이로 건너가 공부를 계속하 지만 상하이사변 발생으로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가지 못하게 되자 문학을 도 구로 한 항일운동에 참여한다.그는 첫 번째 항일 단편소설인 ≪마지막 수 업≫을 발표하고 이어 장편소설 ≪만보산≫을 발표한다.일본에 의해 고향 이 함락된 동북출신의 작가들은 항일과 더불어 실향의 고충과 귀향의식 등 을 묘사하고 있지만,리후이잉의 경우 등단과정에서 좌련의 기관지 ≪북 두≫의 편집인이자 공산당 계열의 중진작가인 딩링의 지지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초기 작품인 ≪만보산≫의 경우 작가 본인의 고유한 성향과 더불 어 딩링의 문학관이 함께 반영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중국어
本文通过李辉英的长篇小说≪万宝山≫力图证明历史的事实和文学的真实关 系。出生在吉林的李辉英,‘九․一八’之前,已在上海公学读书,而由1932年‘上 海事变’爆发,不得不辍学,从而以笔武器开始揭露日帝在东北的野蛮侵略和故乡 同胞的苦难遭遇。1932年1月,李辉英第一篇抗日题材短篇小说≪最后一课≫, 在丁玲主编的左联杂志≪北斗≫上发表。≪最后一课≫发表后,丁玲又约李辉 英写一部以东北抗日斗争为背景的长篇小说。他便以“万宝山事件”为素材,创 作了长篇小说≪万宝山≫。万宝山事件是于1931年7月在吉林省长春市郊区发生 的一次重大国际冲突事件。长农稻田公司经理郝永德未经当地中国政府批准, 将万宝山一带土地转租给朝鲜农民,从而造成中国农民同朝鲜农民之间争水夺 地的纠纷。这次纠纷既是日本帝国主义移民政策的直接后果,又是他们寻机制 造侵华口实的重要步骤。长篇小说≪万宝山≫描写了日本驻长春领事田代、警 部中川收买汉奸郝永德,成立“长农稻田公司”,勾结长春县地方官吏,借开水 田之名,侵占万宝山官荒田,引起农民的坚决反抗。日本警察以此为借口,制 造了“万宝山事件”。作品较为成功地塑造了汉奸郝永德及为抗日而团结的韩中农 民形象。真实地反映了万宝山这一历史事件的真实,揭露了日本帝国主义的暴 行和侵略野心。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역사의 사실과 소설의 진실
 3. 문학적 변형의 원인과 평가
 4. 맺음말
 참고문헌
 中文提要

키워드

만보산 사건 역사사실 문학진실 한중농민 동북작가 항일소설 万宝山事件 历史事实 文学真实 韩中农民 东北作家 抗日小说

저자

  • 김창호 [ 金昌鎬 | 여주대학 관광중국어과 강의전담 교수 ]

참고문헌

자료제공 : 네이버학술정보

간행물 정보

발행기관

  • 발행기관명
    만주학회 [The Manchurian Studies Association]
  • 설립연도
    1998
  • 분야
    인문학>역사학
  • 소개
    만주는 우리들에게 전설의 땅입니다. 19세기말까지 조선의 식자들에게 외면되었던 이곳은 신채호선생에 의해 민족의 발상지로, 한민족 역사의 중심무대로 나타났던 곳이고, 해방전 많은 지사들이 독립운동을 벌인 곳입니다. 또한 남북한 지도자들을 잉태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는 어떤 의미에서 한국현대사의 블랙박스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이 중요한 곳의 많은 부분이 가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만주의 의미는 한국과의 관계를 훨씬 뛰어 넘는 것입니다. 그 동안 만주는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 전공자들로부터도 철저하게 외면당했던 학문의 변방입니다. 기실 이 곳은 지난 수백년간 동아시아 변동의 핵이었습니다. 만주족이 세운 청나라는 여러 융합을 시험했습니다. 유목문화와 유교문화, 혹은 티벳불교와 회교, 유교, 혹은 여러 민족의 접합을 시도, 이것을 토대로 세계최대의 영토를 구축했습니다. 그리고 19세기말 이 곳은 흥기하는 러시아와 기타 서양열강, 그리고 일본 세력이 마주친 접점이었습니다. 특히 일본은 이 곳을 손에 넣으면서 1930년대의 기록적인 번영을 구가했고, 나아가 대동아공영과 서양과의 최종전을 계획했습니다. 당시 일본이 이 곳에 투자한 세계적 수준의 중화학단지는 전후 중국의 중공업단지로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만주는 중국 국공내전 최후의 쟁패가 결정된 곳이기도 합니다. 만주에서의 승리가 아니었다면, 오늘날의 중국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9세기 말부터 1945년까지 이곳은 한족, 만주족, 러시아인, 조선인, 일본인, 몽골인들이 같이 거주한 가히 인종전시장이었습니다. 그야말로의 국제도시 하얼빈에는 이들뿐만 아니라, 유태인, 프랑스인, 독일인, 폴랜드인, 우크라이나인, 타타르인들도 섞어 살았습니다. 편협한 민족경계를 넘는 담론이 구사된 곳이었습니다. 제한적인 수준이며,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오늘날 세계화의 개념 비슷한 것이 제시된 곳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만주는 간단하지 않은 곳입니다. 근년에 만주를 전공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주학회를 결성했습니다. 전공배경도 중국사, 일본사, 역사사회학 등에 두루 걸쳐지지만, 만주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는, 그래서 평생 만주연구에 신명을 바치겠노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간행물

  • 간행물명
    만주연구 [Journal of Manchurian Studies]
  • 간기
    반년간
  • pISSN
    1738-3668
  • 수록기간
    2004~2011
  • 십진분류
    KDC 912 DDC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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